[암살자] 실종(8)
기사입력 1998년 03월 10일 15시 26분
"열시간이 걸렸군."
차의 속력을 줄이면서 버트가 말했다.
오후 한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나일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중간에 엔진을 식히려고 한번 쉬었을 뿐이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는 찻길로 700㎞가 넘는다. 시내로 들어서자 버트가 이준석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대위, 미나 펠리스 호텔에서 내려 드리지. 그곳에서 사건 현장이 제일 가깝소."
이준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고맙소. 버트, 신세를 졌습니다."
"아니. 천만에."
버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당신이 운전교대를 해준 덕분에 덜 지쳤소."
열시간 동안 차안에 같이 있었으면서 나눈 이야기는 얼마되지 않았다.
버트는 깊이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준석도 마찬가지였다.
차가 호텔의 현관 앞에 멈추었으므로 이준석이 차에서 내렸다.
"잘가시오. 버트."
"당신한테 행운을."
버트는 차를 맹렬하게 몰아 호텔을 떠났다. 그는 방해받지 않으려는 것이다.
호텔 도어맨이 다가와 이준석의 옆에 섰다.
"투숙하실 겁니까?"
머리를 끄덕인 그는 로비로 들어섰다. 로비는 시원했다.
더위를 피하려는 관광객이 몰려 있어서 소란스러웠고 몇 무리의 동양인도 보였다.
프런트로 다가간 그는 이집트인 직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중국 관광객인데, 일행은 내일 올거요. 먼저 투숙해도 되겠지요?"
"예약 하셨습니까?"
"지금 내가 예약하는 중이오. 내일 묵는다고."
"그럼 내일."
"아니. 나는 먼저 오늘부터."
시선이 마주치자 이준석이 입술끝만 들고 웃었다.
"그리고 여권은 내일 일행들이 가져옵니다. 괜찮겠지요?"
투숙할때 여권을 맡기는 것이 규칙인 것이다.
이준석의 시선을 받은 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손가방 하나뿐인 간편한 차림이라 보이도 따라오지 않았다. 6층 객실로 들어선 이준석은 가방을 던져 놓고 전화기를 들었다.
룩소르는 커녕 이집트도 초행인 것이다.
교환은 오리엔트 관광의 전화 번호를 금방 알려주었다.
이준석은 오리엔트 관광의 번호를 누르고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여보세요."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난 관광객인데 그곳 위치가 어디요?"
이준석이 영어로 묻자 사내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예. 실례지만 어디 계십니까?"
"미나 펠리스 호텔인데."
"관광안내를 원하십니까? 일행은 몇명이나."
"우선 위치를 말해줘요. 찾아 갈테니까."
"여긴 우체국 바로 옆입니다. 찾기가 쉽지요. 저희가 찾아 뵙는게."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준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리엔트 관광은 유일한 목격자인 하무드가 근무했던 회사인 것이다.
우체국은 택시로 5분 거리도 안되었다.
우체국 앞에서 택시를 내린 이준석은 우선 현관의 그늘 밑에 섰다.
오리엔트 관광은 옆쪽 5층 건물의 2층에 간판이 붙어 있었다.
섭씨 40도가 넘는 기온이었고 지열이 올라 머리가 띵해 왔다.
"저, 실례 하겠어요."
옆에서 들리는 영어에 이준석은 머리를 돌렸다.
동양여자가 서 있었다. 눈이 맑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