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의야구보기] ML스카우트 파동 '죄와벌'
기사입력 1998년 03월 09일 15시 10분
최근들어 미국 메이저리그의 한국선수 무차별 스카우트에 대한 한국 야구계의 반응은 우려와 환영의 두얼굴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총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즉각 대책회의를 갖고 항의단을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 보내기로 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실질적인 대상자 집단인 대학야구 감독들은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적극 권장'을 결의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메이저리그의 대공세는 국내 프로야구 위축을 의미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박찬호를 비롯,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정 석 등 아마 야구의 유망주를 빼앗겨 썰렁한 판에 다른 유망주들까지 뽑아간다면 국내 시장은 스타 부재로 인해 고사할 것이 뻔하다는 게 프로 종사자들의 말이다.
사실 9명이나 신분조회를 한 LA 다저스나 6명의 선수와 입단협의를 벌이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 그리고 이미 김재영과 김선우 등을 스카우트한 보스턴 레드삭스 등 미국 메이저리그팀들의 무차별 스카우트는 한국야구를 뿌리째 흔드는 행위다.
멕시코를 비롯, 니카라과 도미니카 등에서 선수들을 무차별로 뽑아 오는 것처럼 메이저리그는 한국을 `동양의 선수수급창고'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 방식이 최고의 선수만을 뽑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망주는 모조리 뽑는 싹쓸이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박찬호 카드 하나로 5천만명의 한국민들을 팬으로 만드는 행운을 잡은 다저스는 물론이고 다른 구단들도 한국선수들을 뽑아 잘 다듬은 뒤 일본이나 대만 또는 한국에 역수출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국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장삿속에 휘말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메이저리그팀들이 이같은 공세를 펼치는 것은 지난 83년 맺은 한_미야구협정에 대한 유권해석이 KBO와 다르기 때문이다.
KBO는 한국프로팀에서 지명한 아마 선수는 모두 프로선수라고 광의로 해석하고 있는 반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아마선수들은 모두 프리에이전트（자유계약선수）로 보고 있다.
특히 이 협정서에는 아마선수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조항이 없기 때문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무차별 스카우트도 협정위반이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와 함께 메이저리그 공세에 무방비일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83년 이래 단 한차례도 미국과 교류를 갖지 않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KBO는 지난해 11월 대표단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파견해 한국선수 스카우트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만 했을뿐 상호 협력하며 발전해 나가는 등 새로운 협정을 맺을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번에 또다시 항의만하고 선수 협정 개정을 하지 못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국야구는 당분간 메이저리그의 선수수급 창고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KBO와 대학감독들이 두 목소리를 내는 것도 메이저리그가 한국을 공략하기 쉽게하는 요인이다.
대학감독들이 KBO와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최고봉인 프로야구가 아마를 지원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16년동안 한국 프로야구는 온실속에서 살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선수가 수급되니 아마에 대한 투자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히 아마 감독들은 선수를 보내면 해외전지훈련 비용과 10만달러 이상의 예산지원까지 해주는 메이저리그를 선호하게 됐고 급기야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권장하겠다는 결의까지 하게 된 것이다.
결국 프로야구 스스로가 선수 해외 유출을 권장하는 꼴이 되어 버린 셈이다.
얼마전 미국 유일의 전국지인 USA 투데이는 "한_미 야구협약이 개정되려면 적어도 2달이상 걸릴 것이며 더 늦어질수도 있다. 협약이 개정되면 메이저리그의 본격적인 스카우트가 시작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와는 상반되는 해석을 내렸다.
한국과 미국의 야구 기관이 그동안 교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 읽기'를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위기 의식이 있는 KBO가 먼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야구를 구해야 한다.
[부국장대우 야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