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메모] 다저타운의 찬호방
기사입력 1998년 03월 09일 15시 10분
베로 비치 다저 타운내 숙소 164호실.
박찬호의 방에 들어서면 `진짜 한국 사람이군'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6평 남짓한 작은 방 가운데는 침대가 덜렁 놓여있고, 한쪽 벽으로 붙은 좁고 긴 책상위에는 TV가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다.
좌우로 방바닥을 둘러보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한국인 박찬호의 방'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 라면 상자.
그 위에는 오븐에 넣으면 금방 따끈따끈 김이 나는 밥이 되는 햇반이 쌓여있고, 물을 끓이는 전기 주전자가 두개나 놓여있다.
오른쪽 벽에는 인스턴트 카레라이스, 육계장, 북어국이라고 쓴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침대 왼쪽 작은 냉장고 위에 놓인 휴대용 스테레오 앞에는 한국 가수들의 CD가 어지러져 있고, 눈에 반가운 한글 제목의 책들과 바로 곁에는 어머니가 다려주신 한약 봉지들이 보인다.
냉장고 문을 열면 쉰 김치 냄새가 진동하고 마늘종, 고추장, 시금치 나물, 졸인 멸치들도 자리를 하고 있다.
다저 타운이 다른 팀들의 트레이닝 장과 확실히 구분되는 것중 하나는 일류 요리사를 고용해 고급 식당에서나 먹을만한 최고의 식사를 선수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메뉴도 다양하고 매일 고기와 해산물, 야채들, 음료수, 디저트가 풍부하게 선수들에게 제공된다.
그러나 박찬호는 1주일에 2∼3번 이상은 꼭 방에서 자기가 조리한 한식을 먹는다.
그리고 혼자만 한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다저스 입단이 좌절된 정 석（25）과는 얼마전까지 바로 옆방에 살면서 늘 함께 라면과 밥을 먹었고, 동료 선수들도 심심치않게 박찬호의 방을 찾는다.
2년전 도미니칸 공화국의 윈터 리그부터 매운 라면에 맛을 들인 구원 투수 대런 홀은 단골이며, 노모 히데오도 박찬호가 만들어주는 카레라이스를 아주 좋아한다.
마이너 리그 선수들도 이제는 우상이 된 박찬호의 방을 찾아와 한국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을까 기웃거린다.
미국 대륙에서도 한국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쪽 끝 플로리다주의 바닷가 소도시 베로비치에 있는 다저 타운의 작은 방 유리창에서 흘러나오는 쉰 김치와 육계장 냄새가 유난히 정겹다.
등판 전날 꼭 육계장을 찾아먹는 박찬호의 버릇은 올시즌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베로비치（미 플로리다주）＝민훈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