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7)
기사입력 1998년 03월 09일 15시 10분
"대기자 명단에는 넣었지만 룩소르엔 요즘 관광객이 밀리거든요."
일본항공의 이집트인 여직원은 친절했다.
요시에가 일본인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유럽 관광단이 일주일 가깝게 룩소르 여행을 보류 시켰다가 한꺼번에 풀어 버린 때문입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상냥한 요시에의 인사에 여직원이 환하게 웃었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세요."
"어머. 고맙습니다."
따라 웃은 요시에는 가방을 들었다.
대기자 명단에 들었으니 제시간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이 생기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카이로 공항의 국내선 대기실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였다. 룩소르행 비행기는 8시 40분부터 하루에 6회가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뉴욕 양키스의 야구모자를 눌러썼고 주머니가 많이 달린 재킷에다 진바지를 걸친 차림의 요시에였다.
등에는 룩색을 메었고 가슴에는 니콘 카메라를 걸쳤으므로 영락없는 관광객이다.
그러나 룩소르는 전에 두번이나 다녀와서 눈을 감고도 신전안을 돌아 다닐 수 있다.
룩소르행 카운터에 다가간 요시에가 오픈 티켓을 내밀자 이집트인 직원이 머리를 들었다.
첫 비행기의 탑승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직 더 기다려야 돼요."
그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요시에는 티켓 위에 놓았던 주먹을 폈다.
구겨진 50달러 짜리가 티켓 위에 놓여졌고 직원은 자연스럽게 티켓과 돈을 들었다.
그녀가 보잉 737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10분쯤 후였다.
고공에도 구름이 많이 덮여 있어서 비행기는 쉴새 없이 흔들렸지만 요시에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는 곧 잠이 들었다.
기내의 소음을 빠짐없이 들으면서도 요시에는 꿈을 꾸었다.
이것이 꿈이라고 의식 하면서 꾸는 꿈인데 요즘은 매일 이렇다.
아버지가 밝게 웃었다.
"요시에, 이리 오너라. 고집 부리지 말고."
아버지 옆에는 군터 박사가 서 있었는데 그도 웃었다.
"요시에, 군터가 네 코를 떼어갈게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인 군터는 코가 컸다.
그는 어린 요시에에게 다른 사람 코를 떼어서 붙였기 때문이라고 큰 코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었다.
마지못해 요시에가 다가간 순간 폭음 소리와 함께 아버지와 군터가 사라졌다.
눈을 뜬 요시에는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황량한 땅을 보았다.
룩소르 공항에 착륙한 것이다. 소란스런 미국인 관광단 뒤를 따라 출구를 나오던 요시에는 주춤 걸음을 늦췄다.
신사복 차림의 이집트인 두 사내가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다. 이곳은 국내선이라 여권검색도 않는 곳이다.
"요시에양, 소노다 요시에양 맞습니까?"
한 사내가 아랍식 영어로 물었다. 요시에가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손을 들어 옆쪽을 가리켰다.
"우리하고 저쪽으로 가실까요?"
"무슨 일이죠?"
"잠깐이면 됩니다."
일본인 관광객 한 무리가 옆을 지났지만 힐끗거릴뿐 멈춰서는 사람은 없다. 요시에는 건물 안쪽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에어컨이 제법 시원하게 가동되는 방에는 두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 양복 차림이다.
그중 나이든 사내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 보았다.
"도대체 이곳엔 왜 온거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