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출판계를살리자] (5)독자성원이 필요할때
기사입력 1998년 03월 09일 15시 10분
요즘 출판가는 전혀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없는 동네다. 봄은 왔는데 이곳만은 아직도 겨울이다.
작년말부터 시작된 서적도매상의 연쇄부도로 인해 막연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오던 출판업계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면서 끝모를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새로 만들어도 유통체계가 마비된 상태이니 독자를 찾아갈 수가 없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가 책속에서나 그릴 법한 상황이 책 밖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냉정히 따지자면 이번 사태와는 상관없이 출판유통은 그동안 거대 도매상에의 의존도가 너무 심한 기형적 구조로 운영되어온 게 사실이다.
고착 몇몇 도매상의 부도로 출판계 전체가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한마디로 유통이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위기대처능력을 상실한 이러한 구조는 그동안 우리사회의 지식산업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에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전국에 1만2천개의 서점이 있다 하나 극히 제한된 종류의 책만이 진열되고 학술일반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서점 자체의 전문화－대형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요청이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기능이 따로 있듯이 대형서점과 일반소매점은 그 역할이 분명 다르다. 서점공간을 확대하면 그만큼의 독자는 새로이 창출된다는 것은 그간 몇사례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전국으로 체인화된 대형서점의 출현은 도매상의 역할까지 겸하게 되어 앞으로 또다른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위기를 흡수하는 완충장치로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기획출판의 가능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독서관행은 결국 우리사회에 지식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만다. 20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 한권보다는 1만명의 독자를 위한 200권이 우리 출판을 훨씬 건강하게 만든다.
출판의 허리를 튼튼히 하는 일은 우리 출판계가 이 어려움에서 건져야 할 값진 교훈이다. 불황기에는 책의 판매는 더욱 증가한다는데 불행히도 우리 현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독서시장이 이번 사태로 인해 더욱 위축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책은 들면 가볍지만 그 안에는 우리 미래를 들었다 놓을 지식들이 다 들어있는 문화의 핵이다. 붕괴되어가는 지식산업 앞에서 지금이야말로 독자들의 성원과 사회적 응원이 출판계로 모아져야 할 때라는 점을 절실하게 고백한다. [끝]
[이갑수=민음사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