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6)

기사입력 1998년 03월 08일 15시 16분


호텔의 지하클럽에 들어선 이준석은 벽쪽의 빈 테이블에 앉았다.

남자 종업원이 다가 오더니 그저 눈의 흰창만 굴리고 서 있었으므로 쟁반 위에 1달러를 던져 놓고 맥주를 시켰다.

홀 안은 어두웠고 음악이 소란스러웠다. 홀의 안쪽에서는 서너팀의 서양인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지만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박자에 맞지 않았다.

조명이 번쩍이는 것은 마치 야간 전투훈련때 조명탄이 잘못 터질때와 비슷했다.

체격이 육중한 이집트 여자 두명과 흰색 가발을 덮어쓴 서양여자 한명이 그를 스치고 지나면서 눈길을 주었지만 이준석은 맥주병만 보았다.

"너무 시끄럽지요?"

불쑥 들리는 영어에 이준석은 머리를 들었다.

셔츠 차림의 서양인이 옆에 서 있었다.

웃음띤 얼굴은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는데 인상이 부드러웠다.

이준석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의자를 끌어 옆에 앉았다.

"난 버트요, 미국에서 왔습니다."

"난 미스터 리요."

"그럼 한국분이시구만."

버트가 다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소음이 컸으므로 서로 목소리를 높여야만했다.

"한국 성의 대부분이 리, 김, 박이라고 들었거든."

그의 시선이 힐끗 이준석의 짧은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관광 왔습니까?"

"그렇소."

"나도 그래요. 그런데 카이로의 밤 관광은 별로 자극이 없는데. 그렇지 않소?"

"여자 말이오?"

"그렇소.조금전에 당신 옆을 지난 여자들은 그곳에 대포를 쏘아도 끄덕없을 거요."

맥주병을 들어 두어 모금을 삼킨 이준석이 주머니를 뒤져 달러를 꺼냈을때 버트가 테이블 위로 상반신을 기울였다.

"리, 조심해요. 당신은 감시 당하고 있소."

퍼뜩 시선을 든 이준석이 그를 보았다. 시선을 받은 그가 빙긋 웃었다.

"내일 아침 룩소르행 비행기를 예약 했지요?"

"당신은 누구요?"

"아직까지는 당신의 친구요."

주위를 둘러본 그가 정색을 했다.

"나도 룩소르 버스폭발을 조사하는 사람이오. 당신과는 다르게 공식조사를 하는 사람이지."

"…."

"이집트 정보당국이 이미 당신의 인적 사항을 파악한것 같소. 해병 대위라는 것도."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인것 같은데."

"우린 동맹국 사이 아닌가? 여기서 당신 이름을 컴퓨터로 두드리기만 하면 새까맣게 적혀져 나오지."

버트가 맥주병을 눈 높이로 들었다.

"리, 비행기 예약은 취소하는게 나을거요. 아마 당신은 룩소르에 도착 하자마자 체포되어 출국조처를 당하게 될테니까."
"…."

"당신이 룩소르에 꼭 가야 한다면 방법이 있지. 내일 새벽에 차로 떠나는거요. 나하고."

그는 맥주병의 주둥이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새벽 다섯시 정각에 게지라섬의 알게지라 세라턴 호텔로 오시오. 간단한 차림으로."

이준석의 시선을 받은 그가 다시 빙긋 웃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소. 호텔앞 거리에 검정색 벤츠가 있을테니 수단껏 찾아오시오."

버트는 자리에서 일어 섰는데 비틀거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