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이의정(4)
기사입력 1998년 03월 06일 15시 18분
내 청춘일기에 CF 얘기를 빠뜨릴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한다면 라디오 DJ 보다 CF라는 순간 드라마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나 할까. CF야말로 내 존재와 인기를 한꺼번에 확인해주는 보증수표이니까.
푸른 화장품이 주력 브랜드로 내놓은 `소르비티 타이티 에센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화장품 CF는 나를 충분히 감동하게 했다. 설마 내 미모(?)에 화장품 광고를? 주변에서도 `설마 의정이가' 하는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자존심은 좀 상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런데 사실 화장품 광고라고 해도 외모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CF 스타일은 아니었다. 바로 내 개성을 최대한 살린 코믹 상황극이었기 때문.
푸른 화장품의 광고에이전시인 (주)이노컴 광고담당자는 "획일화된 아름다움보다는 독특한 캐릭터에 비중을 두었다"며 나를 캐스팅한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남자셋 여자셋'에서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놓는다는 내용. 말하자면 광고담당자의 말처럼 기존의 화장품 CF에 대한 이미지 파괴인 셈이었다.
상대 역은 차승원이란 키 1m87의 미남 모델이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난 외모로는 더욱더 승부를 걸 수 없는 형편일 밖에.
첫 편은 소개팅을 받기로 한 내가 2층 베란다 옆 좌석에서 기다리다, 조금 늦게 나타난 남자를 보려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난간에 머리가 끼이는 장면. 코믹한 설정이 영락없는 `남자셋 여자셋'의 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뮤직 비디오'편은 드라마에서도 해보지 못한 키스 신.
하지만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큼 결코 아름다운 키스 장면은 아니었다.
1m87의 늘씬한 키와 1m57의 짧은 키는 용서할 수 없는 부조화였다. 무려 30㎝의 키를 극복하기 위해 나무토막과 굽높은 하이힐을 신었지만 역부족. 구구한 변명이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키 큰 차승원에게 매달려 키스를 하는 내 모습이 마치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를 계기로 난 화장품 모델로 정식 등록한 미녀(?) 탤런트가 됐다. 누가 뭐라든,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덕분에 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외모가 안따라주면 연기로, 연기가 안되면 애교로 밀어붙인다는 일종의 오기와 배짱이 생겼다.
나머지 5∼6편의 CF에서도 에피소드는 많았지만 중언부언이 될 것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여러편의 CF가 밀려들면서 방송가에선 나를 시기하는 눈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욱 겸손하게, 그러나 맡겨진 배역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일까. 내게 질투의 눈길을 던졌던 사람들도 `시골영감춤'을 멋들어지게 춰대는 푼수말괄량이 이의정을 보면서 차츰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주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