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4)

기사입력 1998년 03월 05일 13시 49분


"담당자인 영사께서 너무 소홀하신거 아닙니까?"

이준석이 추궁하듯 묻자 조남훈은 마침내 자제력을 잃었다.

"이것 보십시오. 나도 이집트 정보국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연락을 했습니다. 여긴 한국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이준석에게 이런 질책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얼굴을 붉힌 그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내가 댁한테 이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집트 정부당국에서 발표한 자료나 받으셨겠군요."

이준석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다.

"정부당국 발표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때는 이집트 정부와의 마찰을 피한답시고 사건을 덮을 것이고."

그러자 조남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시오！"

"난 아직까지 해병대위야."

이준석이 잇사이로 말했으나 선명한 발음이다. 그가 조남훈을 노려보았다.

"무력으로 날 내보낼순 없을거요."

"경비병을 부르겠어."

"한국 군인을 몰아내려고 이집트 경비병을 부르겠다고? 한국영지인 대사관 안에서?"

이준석의 손가락이 조남훈의 콧잔등과 방바닥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자리에서 5초내에 네 목을 부러뜨려 죽일수도 있어. 입닥치고 가만있어."

그러자 그런 소리를 난생 처음 들어본 조남훈이 침을 소리내어 삼켰다.

이준석이 아직 선채로 있는 그에게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그리고 나한테 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말해 주시오. 이집트 정부에서 보내온 서류가 있다면 그것도 보여주시고."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이곳에 있다가 파리 대사관으로 옮긴 무관 정필수 대령한테 이준석 대위를 아느냐고 물어보시오. 내가 소대장 시절에 대대장 이셨던 분이니까."

한시간쯤 후에 이준석이 돌아가자 어금니를 물고 앉아있던 조남훈이 전화기를 들었다.

어린 놈한테 기가 죽어서 꼼짝없이 당한것 같아서 분했던 것이다. 파리 한국대사관의 정필수 대령은 자리에 있었다.

그가 이준석 대위를 아느냐고 묻자 정필수는 펄쩍 뛰었다.

"알다마다 내가 아끼는 놈인데, 그놈 어디있어?"

조금 김이 빠진 조남훈이 이준석이 찾아온 사연을 말하자 그는 전화기가 날아갈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이구, 어쩌나. 이런 일이 있나?"

그래서 이준석이 서류를 내라고 윽박질렀다고 하자 정필수는 도리어 흥분을 했다.

"아, 그럼. 당연하지. 그놈 성격에 당신이 성한것을 고맙게 생각해야돼."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래서 서류 보여주었어?"

"대사관 서류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씹할, 그것이 무슨 기밀이라고 좆같이."

버럭 화를 낸 정필수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놈 찾아서 보여줘！ 그놈이 내 이름을 댄 이상 내가 책임을 질테니까！"

정필수는 강직한 성품으로 이집트에 같이 있을때 존경해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책임까지 진다는 말에 조남훈은 기가 죽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필수와 틀어졌다가는 신상에 별로 이롭지가 못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