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이의정(3)
기사입력 1998년 03월 05일 13시 49분
박소현씨 후임으로 맡은 `FM 데이트'는 한 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방송시간에 쫓기며 좌충우돌했다. 매일 생방송이란 매력은 그만큼의 위험부담도 도사리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난 모두 4번의 펑크를 냈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방송사고로 기록될 만한 최악의 상태는 늘 피했다. 여태 진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정도다.
`FM 데이트' 제작진은 매주 월요일만 되면 긴장을 하곤한다. 올초까지 방영됐던 KBS 2TV `슈퍼선데이' 야외촬영이 바로 월요일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사고도 꼭 이날에만 집중됐다. 갖은 대책과 준비를 해보지만 녹화를 마치고 출발하면 갑자기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곤 한다.
한번은 용인 민속촌에서 촬영을 마치고 일찌감치 서울로 출발했다. 그런데 도중에 작은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기 까지만 해도 넉넉한 시간이었는데 시내로 들어서자 마자 그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도 여유는 있었다.
운전을 하던 로드매니저가 상대방 차 운전자와 실랑이를 벌이기 전까지는. 처음엔 별 문제 없이 금방 끝날듯 하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상황이 악화됐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방송사로 전화부터 했다. 무슨 일이 있었도 제 시간에 도착하겠으니 기다려달라고. MBC FM에 다이얼을 맞춰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15분전, 10분전, 5분전. 째깍 째깍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이 종소리 만큼이나 큰 소리로 귓전을 때렸다.
올림픽대로의 제1한강교 아래를 지나는데 내 방송이 시작되는 8시를 알리고 있었다.
결국 펑크가 난 셈이다. 아이고 죽었구나. 이젠 어떡하나. 짧은 1∼2초의 순간. 애를 태우고 있는 내 귓가에 태연하게도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오프닝멘트. 아니 이게 웬 사건? 놀랍게도 배철수 아저씨가 내 멘트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제법 애교넘치는 멘트여서 난 그동안의 긴장 대신 배꼽을 빼고 웃어야 했다. 물론 청취자들에게 정중한 양해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코믹한 목소리가 `펑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배철수 아저씨는 내 시간 바로 앞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진행중인데 방송이 끝나고 바통터치를 할 때마다 나를 웃겨주시곤 한다. 궁지에 빠진 나를 구해준 아저씨에게 두고 두고 감사를 드린다. 방송 경력으로나 인생 경험으로나 새까만 후배인 난 대선배님의 도움을 받고 다시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강일홍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