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전훈하던 장소서 '눈물의 쫑파티'
기사입력 1998년 03월 04일 15시 13분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불빛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강원도 속초의 설악현대콘도.
성미 급한 상춘객들의 웃음소리가 성큼 다가선 봄을 알리던 지난 3일밤, 콘도앞 잔디밭에 20여명이 둥그렇게 앉아 맥주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선생님 저흰 어떡해요."
한솥밥을 먹은지 갓 석달도 안된 막내 김나연이 난생 처음 마셔본 맥주 때문인지 그때까지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지난달 11일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해체를 통보했던 SK증권 여자농구단은 지난 2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설악산에서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뿐만 아니라 구단 직원, 버스기사 아저씨, 식당 아주머니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
"1년에 한두차례씩 전지훈련을 왔던 설악산에서 이런 자리를 가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지난 가을 설악산 입구와 울산바위를 오르내릴 때는 어찌나 힘들던지 은퇴 생각이 굴뚝같았다는 맏언니 유영주는 "차라리 그때 농구를 그만 뒀어야 했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게 쌓은 체력으로 회사에 97∼98농구대잔치 우승 트로피를 안겼건만 열흘만에 돌아온 것이라곤 'SK증권 농구단 해체'라는 시커먼 제목이 걸린 신문뿐이었다.
"처음엔 도저히 믿기질 않더니 며칠 지나니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분통이 터지더군요. 이제는 아예 담담합니다."
늘그막에 험한 꼴을 봤다는 이병국 총감독은 맥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 소주를 찾았다.
대부분 자리를 뜬 새벽 2시.
잔디밭에는 '서장훈, SK와 한국스포츠 사상 최고액 계약'이란 헤드라인이 뽑힌 신문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류성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