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금남의 구역 실직남성들이 몰려든다
기사입력 1998년 03월 04일 15시 13분
'금남(禁男)의 성역'이 무너지고 있다.
IMF 한파로 실직남성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구직을 위해 학원이나 백화점 문화센터의 메이크업, 꽃꽂이, 재테크 강좌 등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는가 하면 넥타이 차림의 '보험아저씨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또 주로 여성들이 참석하던 반상회나, 교회 구역예배 등에도 실직 가장들의 발길이 하나 둘 이어지는 등 IMF 시대를 맞아 '남녀 역할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역할 파괴의 선두는 백화점 문화센터나 학원 등의 꽃꽂이나 메이크업 강좌.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서울시내 백화점에서 잇따라 마련하고 있는 주부 대상의 무료 강좌엔 남성 참석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최근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창업 특강' '불황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 등의 재테크 강좌에는 30~40대 남성들이 100여명이나 참석, 눈길을 모았다.
현대백화점 오중희 홍보실장은 "문화 강좌는 대개 평일 오후에 열리기 때문에 그동안 남성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며 "'남성만을 위한 강좌는 없느냐' '창업이나 취업에 활용할 수 있는 강좌를 소개해달라'며 꼬치꼬치 캐묻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서울 강동구 길동의 부영꽃꽂이학원의 경우, 수강생 50여명 가운데 10％인 5명이 남성들이다.
이 학원의 김종민원장(50)은 "얼마전만 해도 꽃꽂이를 배우는 남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IMF 한파 탓인지 남성 수강생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며 "꽃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꽃꽂이 기술을 배우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보험 아줌마'가 주름잡았던 보험업계에도 남성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아생명, 동양생명, 동부생명, 삼성생명 등 생보사들이 '넥타이 부대' 출신의 남성들에게 문호를 잇따라 열고 있는 것.
동아생명 서대문영업부 박영승과장은 "명퇴나 정리해고 등으로 직장을 잃은 남성들의 취업을 지원하고 이들의 사회 경력 등을 활용하기 위해 남성 생활설계사를 채용키로 했다"며 "30명을 채용할 예정인데 반응이 좋을 경우 채용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실직 가장이 늘어나면서 반상회나 교회 모임 등에도 남성 참가자들의 모습이 늘고 있다.
실직후 아내가 가장의 역할을 떠맡는 가정이 증가하면서 아내 대신 반상회에 참석하거나 실직의 아픔을 신앙생활로 달래기 위해 교회를 찾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
주부 이하원씨(35.서울 용산구 이태원동)는 "금요일 낮에 열리는 구역 예배에 남자들이 많이 참석하는 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직 문제가 남 이야기같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강병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