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비화X파일] 가짜 부장검사(1)
기사입력 1998년 03월 03일 15시 17분
부장검사 행세를 하며 거액의 사기행각을 벌인 남자가 부인 행세를 한 여자와 함께 최근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 남녀는 경매담당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싼 값에 물건을 경락시켜주겠다고 속여 주변사람들의 돈을 갈취했다. 서울에서 판사를 사칭하다 대구로 무대를 옮기며 가짜 부장검사로 둔갑, 치밀한 각본하에 벌인 이들의 범죄행각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X편집자 주〉
"여보, 옆집에 이사온 남자 직업이 판사래요." "그래? 판사 알아둬서 나쁠거 없지. 언제 한번 집에 초대해 식사라도 함께 하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주택가.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 판사가 이사왔다는 소문이 나자 주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웃사촌'을 내세워 평소 친분을 쌓아두면 나중에 법적인 문제에 휘말려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식사를 대접하거나 등산을 함께 하는 등 친분 쌓기에 나섰다.
가짜 판사의 이름은 김성철（51·가명）.
김성철은 법원 식당에 근무하면서 판사 행세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법복을 입은 판사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과 질투심을 느꼈던 김성철은 이때부터 자신도 판사 행세를 하며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는 꿈을 품게 된 것이다.
이사한 지 2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판단한 김성철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경매담당 공무원에게 부탁하면 좋은 부동산을 시중가의 절반에 경락받을 수 있다며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이웃의 관심을 촉발시킨 것. 망설이는 이들에게 김성철은 "판사가 사기당할 일이 있겠느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나 도와줄 수 있는 일이다. 변호사가 되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는 말로 유혹했다.
워낙 오랫동안 신뢰와 정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웃주민들은 그가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물건을 골라 낙찰받기까지의 전권을 위임했다.
법원으로 달려가 경매에 나온 물건을 살펴본 김성철은 이중 괜찮을 물건을 눈여겨봐 뒀다 피해자들에게 권유했다. 슈퍼마켓 주인을 비롯, 5명의 이웃주민들이 김성철이 위조한 경락허가 결정서와 8억여원에 이르는 돈을 맞바꿨다.
그러나 돈을 건네받은 김성철은 즉시 행방을 감춰버렸고 피해자들이 뒤늦게 신고에 나섰지만 김성철은 이미 서울을 빠져나간 뒤여서 빼앗긴 돈을 돌려받을 길은 요원하기만 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