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무법시대(9)
기사입력 1998년 03월 03일 15시 17분
사자들은 사파리로 출근하기에 앞서 간이 방사장에서 `인원 점검'을 받게 된다.
점검을 하는 동안 사자들은 지난 밤 사이 아파트에 갇혀있던 답답함을 풀기 위해 기지개도 켜고, 가벼운 운동을 하며 출근을 기다린다.
아주 심하게 감정이 쌓인 놈들끼리는 `해장' 삼아 싱거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아침 점검은 무료할만큼 평온하게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 아침은 사정이 달랐다.
전날 승패를 가리지 못한 바우와 킹 때문이었다.
이들이 비록 속으로는 서로를 피하고 싶어할 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체면을 차리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야 했다.
그런 만큼 사육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바우나 킹 모두 맷집이 좋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일발필살의 무기를 지니고 있어 언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지 모를 일이었다.
개장하자마자 서열 1, 2위를 다투는 강호 중 누군가 죽어나간다면 큰 낭패였다.
이들은 졸지에 삼엄한 경호를 받는 `VIP'가 됐다.
간이 방사장에 패트롤카 2대가 들어가 바우와 킹을 철저히 격리시켜 놓았다.
자기가 공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상대도 공격을 하지 못해 신변 안전이 100% 보장되자 이들은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상대를 기죽이기 위한 고도의 `페인팅'이었다.
사파리에 들어가서도 이들은 마치 패트롤카가 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듯 악을 썼다.
사파리는 8천여평으로 비교적 넓지만 관람객 버스가 다니는 길이 정해져 있어 패트롤카로 길을 막으면 공식적으로는 차단이 가능했다.
물론 사자가 버스 전용 포장도로로만 다니지는 않지만 험한 길도 달릴 수 있는 패트롤카가 `이동 담장' 역할을 하는 데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바위와 킹 스스로 사실상 전투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대충' 독립된 공간을 갖게 된 셈이다.
사파리는 개국 초기부터 남북으로 분단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