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무법시대(7)
기사입력 1998년 03월 01일 15시 27분
칼을 먼저 뽑은 것은 바우였다.
바우는 바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왕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높이'의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분노와 체면 때문에 결전을 각오한 것은 아니었다.
바우는 그 정도로 미련한 왕이 아니었다.
바우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킹이 하루종일 싸우느라 체력이 소진됐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자나 호랑이 등 맹수류는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지구력이 모자란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초식동물들은 지구력이 좋은 편이어서 야생의 세계에서 사냥을 할 때 성패는 초반에 결정된다.
바우가 이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킹이 아무리 타고난 싸움꾼이라고 해도 사자 4마리를 차례로 꺾고, 왕에 대한 `도전권'을 따낸 직후인 만큼 힘이 없을 게 틀림없었다.
바우로서는 마라톤을 완주한 상대를 맞아 격투기를 하는 셈이었다.
객관적인 비교를 하자면 바우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반드시 물리적 논리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요인이야말로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킹은 심리적으로 바우보다 월등히 유리했다.
파죽지세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친 데다 바우를 평지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바우 못지 않게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바우의 타이틀 방어전이자 킹의 패자부활전은 물리력과 정신력의 대결로 압축됐다.
이윽고 바우와 킹은 사정권（射程圈） 안에서 마주섰다.
간이방사장 시절 이미 한차례 붙어본 경험이 있는 데다 조금전까지 신경전을 펼쳤던 만큼 탐색전 따위는 필요조차 없었다.
바우가 먼저 선제공격을 퍼부었다.
왕권 수호를 위해 바위에서 내려온 마당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바우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던 킹은 가벼운 발놀림으로 피하며 반격에 나섰다.
바우 역시 킹의 수를 읽고 있던 터여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첫번째 교전은 쌍방간에 소득없이 끝난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