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명퇴자들 '기원카페'
기사입력 1998년 03월 01일 15시 27분
시간을 보내는데는 바둑이 최고.
퇴직자를 잡기 위한 `바둑마케팅'이 유행하고 있다.
IMF한파에 밀려난 퇴직자들이 기원에 몰리는 것에 착안해 일부 카페들이 한쪽 테이블을 `기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차도 마시고 바둑도 두는 이른바 `기원카페.'
하루해가 길게 느껴지는 퇴직자들로 부터 `도심속의 안식처'로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체인점을 모집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로얄빌딩 지하에 있는 카페 `우벨두'의 주인 이명자씨（43）는 "차와 음료만 팔때는 점심시간이나 퇴근후에 손님을 볼 수 있어 오후에는 나와 종업원만이 자리를 지키기 일쑤였다"면서 "그러나 기원카페로 전환하고 부터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퇴직자들로 하루종일 카페가 북적댄다"고 말했다.
`기원카페'가 성업중인 곳은 주로 서울 광화문, 여의도, 종로, 시청앞 등의 오피스 타운.
우벨두에서 만난 한 명퇴자는 "비록 몸은 회사를 떠났지만 이곳에서 낮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퇴근'할 때는 울적한 마음이 조금은 가셔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원카페'가 단순히 바둑으로 실직의 괴로움을 삭이는 `도피처'만은 아니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창업과 구직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손님들 대부분이 엊그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전직사우이거나 처지가 비슷한 퇴직자여서 `수담'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달래는 동시에 재취업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또 회사에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로도 금상첨화다.
IMF시대에 따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지만 기원카페가 주로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있어 퇴직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바둑 한판이라야 30∼40분이면 족하고 바둑을 두면서 식사도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 부담이 적다는 이점이 있다.
`기원카페'를 출입한지 2개월만에 재취업을 했다는 김모씨（41）는 "바둑으로 근심을 잊을 수 있었고 취업정보를 빨리 접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무엇보다 커피값 3천원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권중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