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웅] (11)대세

기사입력 1998년 02월 27일 15시 13분



윤의충의 앞으로 하이도의 전령장수가 다가온것은 양군이 십리 거리를 두고 벌려서 있을 때였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하이도가 전령을 보낸 것이다.

"대몽골의 유일한 칸 하이도 폐하의 전갈이오！"

그의 목소리가 대평원을 울렸다. 윤의충의 앞으로 다가온 그가 마상에서 가볍게 목례를 했다.

"폐하께서는 오리 앞의 평원에서 원제국의 북방군 총사령과 만나자고 하셨소."

윤의충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좋다. 가겠다."

"각기 시종을 3인으로 제한하자고 하셨소이다."

"난 혼자서도 상관없다."

전령장수가 말고삐를 채더니 일대의 부하들과 함께 질풍같은 기세로 돌아갔다.

"혼자 가시다니 당치 않소이다."

부사령 에르케가 나섰다.

"하이도는 계략이 무궁무진한 인물이오. 근위장수 둘을 데려 가시오. 총사령."

윤의충이 근위장수 둘을 달고 진용을 나서자 7만 대군은 모두 숨을 죽였다.

양군이 결전 대형으로 벌려서 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대평원이어서 시야가 훤히 틔었으므로 앞쪽 대군의 중앙 부분이 갈라서더니 서너필의 기마가 나서는 것이 보였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렀다. 그러나 곧 30만 가까운 양군의 접전으로 피가 개울을 만들고 대기는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찰 것이었다.

거리가 좁혀지자 윤의충은 눈을 치켜떴다. 하이도와 말머리를 나란히 붙이며 다가오는 사람은 향비였다.

그들 뒤로 두명의 근위장수가 따르고 있다. 그들은 십여보의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윤의충이 마상에서 머리를 숙여 예를 보였다.

"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성을 오래 들었네."

하이도가 입술끝을 올리며 웃었다.

"왜 굳이 어렵고 험한 길을 가려 하는가?"

"고려는 고구려의 웅지를 잇지 못했소이다. 소장은 고구려의 옛 영토를 찾아 맥을 이을까 하오."

"쿠빌라이가 내버려 둘까?"

"그땐 중원땅이 될터이니 폐하께서 남진 하시지요."

"대륙을 3등분 하자는 말인가?"

"폐하께서 저를 치신다면 이등분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소리없이 웃은 하이도가 옆에선 향비를 바라보았다.

"이 애를 아내로 삼으면 나와 친척이 될터, 자연스럽게 동맹이 맺어질텐데."

"소장은 형수로 모실분이 있소이다."

"거절 하는가?"

"분에 넘치는 분이올시다. 폐하."

그순간 향비가 들고있던 채찍을 윤의충에게 내던졌다.

공력이 담긴 채찍이었다.

살처럼 날아간 채찍을 윤의충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잠자코 앉아 그것을 맞았다.

채찍은 윤의충의 얼굴에 여러가닥의 핏줄을 만들고 떨어졌다.

눈을 치켜뜬 향비가 말고삐를 채어 몸을 돌리더니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하이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 정에 얽매어 큰것을 잃으려 하는가?"

"소장이 거절해도 폐하께서는 길을 터주실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저 애는 그대를 흠모하고 있다."

한동안 윤의충을 바라보던 하이도가 손을 들어 동쪽을 가리켰다.

"가게나, 저쪽이 그대 땅이 될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네."

그가 다시 웃었다.

"허나 그대는 난세에 태어난 고려 영웅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