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석] 지성-야성 '불꽃같은 남자'

기사입력 1998년 02월 27일 15시 13분


탤런트 정보석(鄭普碩．36). 그 열일곱살의 초상화는 참담했다. 모질고 고단했다.

"아버님, 대학에 입학한 후 돌아오겠습니다."

서울 성남고 2년생 정보석. 상처입은 영혼. 어딘가 비상구를 찾아야만 했다.

땡전 한 푼 없었다. 부곡(수원 부근)의 친구 자취방으로 갔다. 더부살이.

신문배달, 야채배달 등 돈되는 일이면 뭐든지 했다.

"신문 구독료 수금이 힘들었다. 내일 와라, 모레와라.…… 울고 싶었다."

정보석. 야구선수. 투수였다. 그러나 연습중 허리를 다쳤다. 곱사등이가 될 뻔했다.

"야구선수로의 꿈은 무너졌다. 절망뿐이었다. 바닥권 성적으론 대학은 어림도 없고…."

최낙후 선생을 찾았다.

"이젠, 연극배우만이 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대학에 가라. 길이 있을 거다."

고2에 다시 눌러 앉았다. 그 와중에 무단가출을 감행한거다.

고3. 서울 방배동 독서실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기식(寄食). 죽자사자 공부만 한다.

수학은 일찌감치 포기. `암기과목 만점 작전'이 주효했는지, 중앙대 연극영화과 합격.

탤런트 정보석. MBC TV 일일 연속극 `보고 또 보고'(3월 2일 첫방영)에 캐스팅됐다. 간호사 김지수(은주역)의 연인, 검사 기정역.

"겹사돈을 맺은 두집안이 티격태격하는, 홈드라마다. 방영중인 `사랑'에서도 김지수와 불륜관계인 유부남역인데…. 김지수와는, 전생에 무슨 인연인지?"

정보석.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에선 소매치기 물새역으로 상종가를 쳤다.

"칼돌리기는 독고영재(영화배우)형, 안창따기는 전직 소매치기에게서 배웠다. 칼돌리기 연습하다 숱하게 손도 베었다."

영화 `제5의 사나이'에선 청부살인업자로, `웨스턴 에비뉴'에선 LA의 1.5세 건달역을 해냈다.

뿐 아니다. MTV 드라마 `아들의 여자'에서도 술집주인 건달역을 했다. 그러다 MTV 드라마 `장미의 눈물'에서 `연기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변호사역이었다. 돈키호테형이 아닌, 햄릿형 연기여서 무척 힘들었다.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변호사 친구들에게 자문까지 구했다."

영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선 사회부 기자역.

"친구인 신문기자(경찰서 담당)를 죽자사자 따라 다녔다. 1주일간…. 그러나 술 퍼마신 기억밖엔 없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본 진짜 기자들이 말을 던졌다.

"어때, 탤런트 때려치고, 진짜 신문기자, 한번, 안해볼라나?"

정보석. 인터넷엔 그에 대한 평이 수시로 뜬다.

`야성미와 지성미를 겸비했다' `우수(憂愁)의 황제(皇帝)다' 등. 펜층은 20∼30대가 주류.

정보석. 전남 나주 태생. 광주 산수초등학교－광주 충장중－성남고－중앙대 연극영화과 졸.

중학생땐 검도와 야구에 빠진다.

이때 셰익스피어의 소설에도 몰입한다. 이는, 훗날 연극배우로의 변신에 거름이 된다.

대학졸업반. 졸업작품－연극 `소금장수'에서 주인공역을 맡았다. 그러나, 망신만 당했다. "야, 인마, 그것도 연기냐? 고등학교 학예회인줄 아냐?"

그런데, 되레 오기기 일었다.

라면집을 내, 번 돈으로 `한뼘의 공간'을 마련, 연기연습만 했다.

대학 졸업. 스물 다섯. 극단 `가교'에 입단, 연극배우가 된다.

이듬해 KBS TV의 6．25특집드라마 `백마고지'에 장군부관역으로 출연.

이어 MTV창사특집 드라마 `젊은 날의 초상'에 주인공으로 픽업된다. 선배 탤런트 박인환의 추천으로.

그러나 `젊은 날의 초상'은 `젊은 날의 절망'이 된다.

첫 촬영후. 김한영 PD는 말했다. "연기? 아무나 하는 게 아냐. 다른데 가서 알아 봐！"

"황당했다. 탤런트는 신기루였다. 당장 갈 곳도 없었다. 중앙극장에 가서, 첫회부터 최종회까지 죽치고 앉아 펑, 펑, 울었다."

`포기냐, 재기냐? 이것이 문제로다.' 진종일, 독백만 했다.

이튿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김한영 PD를 찾았다.

"죄송합니다…."

"좀, 작은 역이라도 할래?"

폐결핵 환자역이 가까스로 돌아왔다. 연기가 괜찮았나? KTV의 TV문학관 `젊은 느티나무'에 출연한다.

`연기가 거칠다. 그러나 이미지가 괜찮아, 강렬해'라는 평. 이어 KTV의 `사모곡'에서 악역으로 뜬다.

촌로(村老)들이 `죽일 놈！'이라며, 지나가는 정보석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헤프닝도 있었다.

정보석. 아내 기민정은 4세 연하. 대학 신입생 환영회때 점찍어, 8개월간 공들인 끝에 공략. 아홉살, 일곱살짜리 두아들을 두고 있다.

"연극무대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93년, `시저'역으로 출연한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