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무법시대(5)
기사입력 1998년 02월 26일 16시 35분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은 출렁이는 시저와 수지의 코 끝에 유난히 향긋하게 느껴졌다.
사파리 중심가에서는 피튀는 싸움이 한창이지만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특히 시저는 남들처럼 이빨을 번득이며 싸울 필요가 없다는 현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바우가 왕위에서 쫓겨나지만 않는다면 2인자로서 황태자 못지 않은 부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봄은 대자연이 되살아나는 활력의 계절이다.
비단 풀이나 나무만 새 생명을 얻는 게 아니다.
자연과 하나일 수밖에 없는 동물들도 봄이면 왕성한 힘을 얻게 마련이다.
시저도 마찬가지였다.
계절의 영향으로 기운이 아지랭이처럼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데다 겨우내 비좁은 아파트와 간이방사장만 오가는 바람에 온몸이 녹슬 지경이었다가 드넓은 사파리에 나오니 없던 힘도 불끈불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시저와 한바탕 즐긴 수지는 짝짓기가 끝났지만 다른 곳으로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파리의 모든 수컷들이 싸움판에만 몰려있으니 어디 갈 곳도 없었던 것이다.
시저 역시 갈 곳 없는 신세는 마찬가지여서 체력을 회복하며 눌러 앉았다.
그리곤 다시 짝짓기.
몇합(合)을 한 뒤에야 시저는 수지 곁을 떠났다.
사파리는 여전히 혼전의 연속이었다.
바우가 없는 곳인 만큼 킹이 대세를 휘어잡는 분위기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평정한 것도 아니었다.
시저는 `사자판'을 피해 또다른 재미를 찾아 사파리 주변을 구경다녔다.
이때 암컷 냄새가 또다시 시저 코 끝을 자극했다.
냄새의 주인공은 아까 만났던 수지가 아닌 이브였다.
오전내내 탈진할 만큼 데이트를 즐긴 시저지만 색다른 파트너를 보자 새로운 힘이 불끈 솟구쳤다.
이브 역시 시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브와 시저의 만남도 몇번이고 계속됐다.
사파리 개장 첫날 바우의 왕위 즉위식은 엉망이 됐지만 오직 시저만이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본 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