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크래쉬 충돌 -사랑의 함수 '충격보고서'
기사입력 1998년 02월 25일 15시 15분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 뿐이다. 욕망은 언제나 더 큰 만족을 추구하고, 또다른 욕망을 낳기 때문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크래쉬'(Crash)는 이를 충실하게 이행해 보인다.
자동차의 충돌과 성적 엑스터시의 함수관계에 집착하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더 큰 욕망을 좇는다. 자동차가 부딪칠 때의 충격에서 쾌감을 감지하는 이들은 충돌의 정도를 조절해보기도 하고, 부숴진 자동차 안에서 격렬한 섹스를 나누기도 한다.
아마추어 카레이서인 크로넨버그 감독은 자동차를 단순한 소품으로만 두지를 않았다. `크래쉬'에서의 자동차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또다른 배우다. 충돌로 찌그러진 자동차에서 섹슈얼리티가 느껴지는 것도 이때문.
운전도중 여의사 헬렌(홀리 헌터)의 차와 정면충돌한 제임스(제임스 스페이더)는 피를 흘리고 차안에 처박혀 있는 헬렌에게서 야릇한 성충동을 느낀다.
입원해 있는 동안 헬렌과 마주친 제임스는 다시 성충동에 사로잡혀 애인 캐서린(데보라 웅거)과 자극적인 섹스에 탐닉한다. 그리고 헬렌이 퇴원하는 날, 헬렌과 자동차 안에서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다.
이를 계기로 제임스는 충돌과 섹스의 이상한 관계에 이끌린다. 그리고 헬렌의 소개로 만난 본(엘리어스 커티어스)으로부터 알게 된, 사람과 기계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에로틱한 힘에 대해 더욱더 빠져든다.
본의 애인 가브리엘(로잔나 아퀘트)도 자동차의 충돌에서 성적 엑스터시를 느끼는 인물.
제임스는 이들과 어울리면서 인간이 어떤 강도의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죽음에 도달하며, 그 순간 성적인 에너지는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실험해보기도 한다.
포르쉐 스포츠카를 질주하다 충돌사고로 죽은 제임스 딘의 자동차사고를 재현하는 등 끊임없이 차량 충돌사고를 일으키며 보다 자극적인 쾌감에 집착한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자극적인 성충동 코드를 영화전체에 도배해놓고 있다. 제임스가 운전석에 앉아있을 때, 뒷자리에서 본과 헬렌이 동물적인 섹스를 펼치는 장면은 에로틱하기 짝이 없다.
또 제임스가 뒤에서 자신의 자동차를 들이받을 때마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캐서린의 표정, 마침내 캐서린의 자동차가 언덕밑으로 구르고난 뒤 전복된 자동차 옆에서 격렬한 섹스를 나누는 제임스와 캐서린의 마지막 장면 등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크로넨버그 감독의 설명처럼 사디즘과 마조히즘 등 표현의 한계를 넘나드는 `충격영상'의 재미가 쏠쏠한 영화가 `크래쉬'다.(3월7일 시네코아극장)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