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신은경(4)
기사입력 1998년 02월 23일 15시 58분
여러분은 연기자로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연기자에게 가장 심한욕이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연기를 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몇번 있다.일신여중 3학년 시절.어느 단막극에서 기업체 여직원으로 출연했을 때였다."부장님,전화 왔습니다" 란 짧은 대사로 기억되는데 사무적인 어투가 익숙지 않아 계속NG가 났다.
나는 한 스태프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그는 다른 아역배우를 가리키며 "국민학생(초등학생)인 저 아이보다도 못하다"면서 나를 몰아세웠다.그러면서 그는 200원을 주면서 커피 4잔을 뽑아오라고 했다. 눈문이 핑 돌았다.나는 눈물을 흘리며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물론 당시에도 200원으로 커피 4잔을 뽑을 수는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보태 4잔을 채웠다.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세상 일이란게 그래도 동전 몇푼을 보태 해결되고,용서 받을수 있는 것이라면 견딜만 하겠구나.'
중3때 집안에도 안좋은 일이 생겼다.강릉에서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그 일은 나에게 큰충격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연기활동에만 매달렸다.
안양예고에 진학하고,제법 어른티가 나면서 점차 비중있는 배역을 맡기 시작했다.배역이 커질 수록 부담도 늘어나는 게 사실이다.내가 방송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말은 "너 때문에 드라마 망친다"는 것이었다.정말 비수로 찍히는 듯한 아픈 말이었다.나는 화장실에 가서 한참동안 혼자 울었다.
연기자들은 종종 '울렁증'이란 말을 쓴다.아마도 주눅이 들고,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할때 쓰는 말일 듯싶다.최선ㅇ르 다해서 있는 능력을 다 발휘해도 힘든판에 울렁증까지 걸리면 연기자로서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아역탤런트로서 나의 얼굴이 알려지세 된 계기가 된 작품은 KBS'옛날의 금잔디'라고 생각된다.고3때 나는 고3생 역할을 맡았다.이낙훈 선생님의 손녀역이었다. 이 작품으로 나는 KBS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물론 상은 못받았지만….
상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그 다음해에도 '검은 자화상'이란 드라마로 또다시 신인상 후보에 올랐고,역시 수상은 못했다.연속으로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지니까 자신감도 떨어졌다.'내가 연기에 자질이 없는것은 아닐까?''다른 살 방도를 찾아야되지 않을까?'
이때 MBC에서 출연섭외가 들어왔다.이승렬PD의 '파일럿'이란 드라마였다.이PD는 "KBS미니시리즈에서 주연도 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번 배역은 큰 역할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면서 "하지만 은경씨라야 해낼 수 있는 역할"이라고 설득했다.개성있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배역이란 설명이었다.
방송국을 옮겨보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 될 숭 있다는 생각에 나는 출연을 결정했다.최수종 이재룡 한석규 김혜수 채시라 음정희 등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했고,나는 조연인 개성있는 스튜어디스 역을 맡게 됐다.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파일럿'은 인기드라마로 부상했다.이동하는 촬영버스안에서 스태프들이 '파일럿'의 주제가를 목청껏 부르는 모습에서 자신이 하는 드라마에 대한 애정과 의욕을 읽을 수 있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