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의야구보기] 외국인선수 한국문화 '접속'
기사입력 1998년 02월 23일 15시 58분
박찬호에게 벌써 2년이나 된 `양복사건'을 이야기하면 아직도 얼굴을 붉힌다.
지난 96년 6월19일 시카고 커브스와의 원정경기서 벌어진 양복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구원승과 더불어 승리타점을 올려 기분이 좋았던 박찬호는 라커룸에서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자신의 양복을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1천300달러나 주고 산 옷이 망가졌다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치를 떨었다.
욕설을 퍼붓고 의자를 던지는 등 분풀이를 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신인을 메이저리그의 동료로 인정한다는 다저스의 통과의례였다.
다른 미국선수들은 그것보다 더 심한 통과의례를 받아들여 심지어는 여자복장을 하고 비행기를 타는 일이 있어도 웃어 넘겼지만 박찬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다.
미국 선수들을 동양에 접목시키려고 한 일본에서는 다른 문화로 인한 시각의 차이로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불과 두달만에 무단귀국한 다이에의 케빈 미첼, 경기도중 아내가 딸을 낳았다고 경기를 포기하고 병원으로 달려간 니혼햄의 투수 킵 그로스, 아홉살이나 많은 선배와 삿대질하며 싸워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야쿠르트의 호지 등 대부분의 미국선수들이 일본의 군사문화적 사고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고참의 충고에 후배가 눈을 부라리고, 개인적인 일로 경기를 포기하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무단 행동을 하는 등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생각하는 파란 눈의 외국인선수들이 한국 프로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올시즌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게 될 외국인 선수는 10명.
이들은 요즘 훈련과 함께 한국식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대체로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고참 선수가 오면 모자를 벗고 한국식으로 인사를 하는 등 한국문화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현대에서 수입한 투수인 스트롱은 가장 한국문화에 익숙한 선수다.
그는 설렁탕은 물론이고 삼계탕, 삼겹살, 김치 등 한국 음식을 한국선수들보다 더 잘먹고 있다.
최근에는 조웅천에게 전라도 사투리까지 배워 "너 시방 뭐하는 겨"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해 배꼽을 잡게 했다.
삼성의 호세 파라는 선수단 회식에서 한국 문화는 그런 것인줄 알고 선수들이 권하는 술을 거절않고 받아마시다 무려 소주 4명을 비웠고 양고기라는 말에 보신탕을 먹기도 했다.
만일 자신이 먹은 것이 개고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선수들이 속인 결과는 시한폭탄으로 감춰져 있다.
롯데의 내야수 브래디는 한국 음식중에는 스파게티와 비슷하게 생겨서인지 국수만 먹고 있다.
통역으로부터 우리말을 배우고 있지만 존대말이 헷갈려 애를 먹고 있다. 최근에는 고참 김응국에게 응국이형이 아닌 `응국아'로 불렀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 LG의 앤더슨은 난생처음 가본 대중탕에 발을 디딘 순간 한참을 두리번거렸단다.
게다가 선수들이 서로의 몸을 툭툭 치며 장난하는 것을 보고 `호모 집단'인줄 알았단다.
나중에 통역의 설명을 들은 후에 이해는 했지만 숙소만큼은 혼자 쓰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한다.
OB의 타이론 우즈는 팬티 차림으로 대중 목욕탕에 들어가 새로운 사우나 팬티 패션을 만들기도 했다.
외국인선수들은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너무 이질적인 부분이 많아 적응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으로 하는 팀운영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분위기, 상명하복식의 구조, 한국선수들의 배타적인 성향,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한국선수들의 성격 등 외국인선수들이 독특한 우리문화와 융화하지 못하면 물과 기름처럼 겉돌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수입선수들이 느낄 문화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구단은 아직도 없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맞는 철저한 조사에 이은 꼼꼼한 사후관리는 꼭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경기력 향상과 함께 정체에 빠진 프로야구에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당초의 목표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부국장대우 야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