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초대석] 전명규 감독 '최선다해 후회는 없다'
기사입력 1998년 02월 23일 15시 57분
제18회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금3 은1 동메달 2개를 따내는데 사령탑을 맡은 전명규（全明奎．35）감독은 명장（名將）중의 명장이다.
3차례 연속 동계올림픽에서 코치（92, 94년）와 사령탑（98년）을 맡으면서 획득한 전과가 금9 은3 동메달 4개 등 메달 16개.
30대 중반의 `청년'에게 장군의 칭호를 붙이는 것이 지나친 환대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따낸 메달 전체를 한 종목에서 일궈낸 그의 업적은 어떤 수식어를 붙여줘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격전의 날'을 마치고 휴식의 여유도 없이 귀국준비를 서두르는 전감독을 22일 오후 나가노시내 선수촌에서 만났다.
_이제 턱수염을 좀 깎아도 괜찮을 것같은데요.（전감독은 선수들의 필승을 바라는 뜻에서 한국을 떠난 지난 7일부터 면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올림픽이 끝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 정신을 차린 뒤, 제 모습을 한번 되돌아 봐야지요.
_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이 올린 성적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1∼2개의 금메달을 추가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점에서 후회는 없습니다.
_가장 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느 종목인가요.
▲다들 공감하고 계시겠지만 남자 5천m계주에서 충분히 딸 수 있는 금메달을 놓친 게 너무도 아깝습니다.
_이호응이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금메달은 문제없었을 거라는 얘긴가요.
▲물론이지요. 지난 일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실패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꾸지람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호응이가 넘어졌을 때 최소한 15바퀴만 남아 있었어도 역전이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골인까지 7바퀴가 남은 상태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경기에 출전한 4명의 선수 모두가 아주 당황했던 것같습니다.
_그렇게 따진다면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이 참 불합리한 것 아닌가요. 결승이 아닌 준결승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이호응에게 다리를 건 중국의 리지아준은 실격을 당하고 한국선수들은 퀄리파이（QA）를 얻어 결승에 진출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는데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이 쇼트트랙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저는 야구는 잘 모르지만 잘맞은 타구가 오히려 상대수비수에게 빨리 잡혀 더블플레이를 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이해를 하고 넘기지 않으면 정말 분해서 견디지 못할 겁니다.
_한국 쇼트트랙이 세계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있을 법한데요.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한국의 쇼트트랙 경기시설은 그야말로 후진국 수준입니다. 태릉을 비롯한 5∼6군데 연습장이 있지만 내부시설이나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 등을 따지면 일본이나 캐나다와 같은 나라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이니까요. 이렇게 본다면 한국선수들이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100％ 노력의 결과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또 외국선수들이 좋은 시설을 갖고도 우리 만큼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고요.
_이번 대회를 계기로 체육행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훈련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_선수들에게도 할 말이 많을텐데요.
▲그동안 어린 후배들에게 너무 혹독한 훈련을 시켜 속으로는 언제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훈련과정을 아무 말없이 소화해준 선수들이 너무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만 이번의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 더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_귀국한 뒤에 특별한 계획은 있습니까.
▲피로가 풀릴 만큼만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선수들을 불러모아 훈련을 재개할 생각입니다. 올림픽은 4년뒤에도 있고 8년뒤에도 있는 것이니까요.
[나가노=김석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