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신풍속] '한지붕 다가족'
기사입력 1998년 02월 22일 15시 50분
IMF한파가 가족제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핵가족이 어느새 대가족으로 변하는가 하면 이산가족으로까지 분열돼 우리사회에 IMF 주거 신풍속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한지붕 다가족'의 개념인 `홈풀'（Home pool）이 등장한 것도 신풍속도의 한 단면.
이처럼 가족제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은 IMF시대 이후 고정수입의 격감과 물가 급상승으로 실질 가계소득이 감소됨에 따라 너나할것 없이 허리띠 졸라매기를 생활의 기본으로 삼으려는 변화의 결과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32평형 아파트에 살던 중견기업 차장인 김인영씨（40）는 최근 부인과 두자녀（12살, 10살）를 데리고 부모가 살고 있는 서울 본가에 합류해 한지붕밑에 3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제도를 이뤘다.
최근에 회사의 보너스 지급이 없어졌고 월급마저 언제 줄어들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아파트 관리비 20여만원을 `괜히' 낼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아파트 임대를 주면서 생긴 목돈으로 재테크를 구상하고 있다.
또 서울외곽 23평짜리 중형아파트에 살던 김미숙씨（31．주부）는 아파트를 세주고 남편 박모씨（33）와 딸（3살） 등과 함께 친정집으로 들어가 그동안 누려오던 단란한 핵가족생활을 포기했다.
이에따라 남편은 졸지에 `데릴사위'가 됐지만 김씨는 대가족제의 불편함을 감수한 대가로 또다른 활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파트에서 나온 전세금 6천만원을 갖고 잘 굴리면 훨씬 경제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라며 "요즘은 금리가 높은 단기성 금융상품을 찾기위해서 은행의 재테크 상담자를 만나러 다닌다"고 밝혔다. 이와는 달리 이달말 서울근교 아파트의 입주를 앞두고 있는 자영업자 박모씨（53）는 건설업체가 원자재 가격급등과 자금압박으로 공사를 중단하자 졸지에 거리로 내쫓긴 `홈리스족'이 됐다. 박씨는 자신이 살던 32평의 연립주택에서 나온 전세금 6천만원을 담보로 사채를 얻어 새아파트 입주를 위한 중도금과 잔금을 마련했으나 그만 날벼락을 맞았다.
이에따라 박씨는 여관을 얻어 부인과 함께 살고있고 회사원인 아들（23）은 회사 숙직실에서 기거하는 등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돼버렸다.
또 분당에서 32평 아파트에 각각 9천만원씩 전세를 살던 이모씨 형제는 48평형 아파트 전세（전세금 1억 1천만원）로 옮겨 `한지붕 두 가족'의 다운사이징을 결심했다. 지난해말 명퇴를 한 이들 형제는 재기를 할 때까지 주거지를 한곳으로 모아서 불편하지만 소비를 줄여보자는 합의를 했다.
형제는 1억 8천만원의 전세금 가운데 새 아파트 전세금을 제외한 7천만으로 IMF 신종유망사업을 찾기 위해 창업 및 취업박람회장을 발이 닳도록 쫓아다니고 있다.
한국부동산컨설팅의 정광영 대표는 이같은 가족형태의 변화와 관련,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독립가구를 유지하기 힘들어 생기는 사회현상"이라며 "앞으로 정리해고가 본격화되면 이같은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