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만원객석 '좋다' 추임새 절로
기사입력 1998년 02월 22일 15시 50분
춘향역의 안숙선이 한양으로 떠나는 이도령을 부여잡고 이별가를 토한다. 과연 절창이다. 눈물이 쏙 빠질만큼 애절하다. 객석 여기저기서 "저런",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잘한다∼" 하는 추임새도 끼어든다.
방자가 도령을 희롱하는 대목, 월매가 거지꼴이 되어 찾아온 이도령을 구박하는 대목 등에선 박장대소다. "좋다" 소리가 절로 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도 나이를 잊는다.
26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1천 500석의 좌석이 모자랄 만큼 관객이 밀려든다. 50대 이상 장년층, 서민들이 주류다. 더러는 보조의자에 앉고, 더러는 아예 서서 본다. 14일 첫 공연부터 연일 만원사례. 흥행 홈런이다.
다 아는 얘기고, 결말도 뻔하다. 그런데도 재미있다. 여섯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이번 `춘향전'은 안숙선, 오정숙, 조통달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을 한자리서 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 찬조출연한 국립무용단의 화려한 춤은 눈을 즐겁게 한다. 방자역 김학용의 감초연기도 윤기를 더해준다. 스케일이 큰 무대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휴식시간에는 집에서 싸온 김밥도시락을 먹으며 삼삼오오 얘기를 나눈다.
"오정숙이 명창은 명창이야. 환갑이 넘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목청이 좋은지", "방자도 연기를 참 잘하데. 젊은 사람이 재주가 신통해", "창을 할 때 가사가 자막으로 나왔으면 좋겠어. 내용이야 짐작하지만 아무래도 불편하더구만." 한마디씩 공연평을 한다.
오후 10시. 귀가하는 얼굴들에 미소가 가득하다. 70대 후반의 노부부는 "표를 사준 딸애에게 고맙다는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은근히 딸자랑이다.
국립창극단이 "일본의 가부키, 중국의 경극에 필적할만한 우리 전통극을 만들자"는 야심으로 제작한 이번 `춘향전'은 100년 가까운 국내 창극사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창극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입석 관객이 들어찰 만큼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는 숙제로 남는다. 인물들의 성격, 갈등구조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몽룡과 춘향의 옥중 상봉장면같은 하이라이트가 밋밋하게 처리돼 극적인 효과를 얻는데도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평이다.
가사의 음란성 때문인지 `사랑가'를 생략, 일부를 학춤으로 대체한 부분도 여운을 남긴다. 완판장막창극을 만들자는 처음 취지를 생각할 때 그냥 밀고나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나치게 화려한 무대도 창의 역할을 감소시켰다. 1부 오후 4시, 2부 7시.(02)273－1173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