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신은경(2)
기사입력 1998년 02월 20일 16시 26분
자유를 얻는 대가로는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스물셋이 됐던 96년. 방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오다시피 한 나는 미숙 언니(당시 매니저였던 방미숙씨)와 강남의 조그마한 아파트에 거처를 마련했다.
당시 나로선 너무나 절실한 문제였던 독립을 하게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의 문제들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밥을 해야했고, 옷을 갈아입으려면 빨래를 해야 했다.
너무나 급하게 시작한 독립이었기에 촬영의상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애를 태우는 일도 생겼다.
당시 내게 닥쳐온 또하나의 고민은 세금 문제였다. 연예인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겠지만 자유 직업인의 경우, 한꺼번에 거액의 세금을 납부해야하기 때문에 돈마련에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생긴다.
내 기억으로 그때 5억원정도의 세금이 나왔고, 당시로선 돈을 마련할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 몸은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지만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방황은 멈추지 않았고, 현실은 나를 옥죄어 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음주운전 사고는 바로 그 즈음에 터진 사건이었다. 96년 11월 19일이었다.
그때 내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불면의 밤이 계속 됐다. 일주일이 지나도 잠이 안왔다.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바닷가가 보이는 친척집에 내려가 있기도 했다.
내가 나를 용서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사건이 있은 후 2개월정도 지나서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면서, 내심 작품을 하자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강남의 일식집에서 이사장님과 만났다. 출연 섭외건은 아니었다.
이사장님은 "한국에서 좋은 배우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좋은 연기자가 한번의 실수로 묻혀지는 일이 생길까 봐 안타깝다"고 말해 주었다.
아직도 나를 좋은 연기자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태흥영화사팀들과는 이후 일과는 무관하게 종종 만나게 됐다. 이사장님은 내게 밥도 사주시고, 술도 사줬다. 이사장님은 "음주운전만 안하면 됐지 술까지 끊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농담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사장님은 불쑥 "만약 창녀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네가 해볼 수 있겠니?"라고 물었다. 나는 "여자 연기자라면 평생에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일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영화 `창'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꼭 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하면 누가 되지 않을까…'란 걱정을 하면서도.
97년 6월 8일 나는 벽제세트장에서 `창'의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전 청량리와 미아리의 특수지역을 다니면서 직업 여성을 만났고, 나는 영은이란 배역에 이미 푹 빠져 있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나는 `창'을 통해 다시 대중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 쏟아졌던 질책도 또다른 관심의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비로소 빠져 나온 느낌이었다. [계속]
[안영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