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여자농구 화합의 길 찾아라
기사입력 1998년 02월 19일 15시 31분
창문 너머로 남대문이 내다보이는 서울 태평로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사무국은 요즘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한쪽 벽에 붙은 일정표 대로라면 지금쯤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할 사무국 직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애매한 담배만 피워댄다.
침울한 분위기 때문인지 여자 프로농구의 산파역을 자청했던 조승연 전무는 이미 자리를 떴고, 손정웅 사무국장은 아무말 없이 창밖을 응시한다.
원년 시즌 경기 스케줄을 확정짓고 문체부로부터 법인 인가만을 기다리며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지난 11일.
청천벽력같은 SK증권의 해체 발표가 있었고 시계는 거기서 멈춰 버렸다.
"퇴화하는 여자농구를 살려보자"며 프로농구 출범을 처음 도모했던 1년5개월전으로 되돌아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린 SK증권의 공중 분해가 이들을 허탈감에 빠뜨렸다면, 지난 17일 열린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회의 결정은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농구협회는 이날 "여자 농구팀이 연쇄적으로 무너지게 된 책임은 무리하게 프로 리그를 출범시키려는 일부 농구인들에게 있다"며 `WKBL 원죄론'을 설파했다.
지난해 여자실업농구연맹에서 빠져나와 `유령 단체'를 만들었다며 암암리에 비난했던 협회로서는 SK증권이 해체되면서 여자프로농구의 조기 출범이 어려워지자 그 책임을 몽땅 WKBL에 떠넘긴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농구발전기금 1억2천만원을 내놓는다'는 비밀 협약서까지 제출케 했던 협회가 금융팀들이 무너질 때는 침묵을 지키다가 이제서야 `대책회의' 운운하는 것은 WKBL을 마녀로 삼아 화형식을 갖겠다는 결정이라는 게 양식있는 농구인들의 지적이다.
84년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을 확인하는 등 경쟁력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농구.
"생사의 기로에서 산소 마스크에 의지하고 있는 여자농구에 지금 필요한 처방은 책임 규명이 아니라 신선한 공기"라는 WKBL 관계자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류성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