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세(4)
기사입력 1998년 02월 19일 15시 31분
북방군 총사령 겸 감숙행성 병마절도사 윤의충이 원제국의 수도인 대도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달 후인 유월이었다.
황제는 남쪽의 전장에 내려가 있었으나 대도는 제국의 수도답게 번화하고 웅장했다.
영빈관에 여장을 푼 윤의충은 곧 감숙행성군을 인솔하여 먼 서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도착한지 사흘째 되던 날 오시무렵, 영빈관의 청에 앉아있는 윤의충의 앞으로 여진족 장수들이 모여 들었다.
앞에 선 장수는 오랫동안 윤의충을 모셔온 부장 영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장군과 헤어지게 되어서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소이다."
그는 목이 메었다.
"이제 총사령으로 장군의 수뇌가 되신데다 서북쪽으로 떠나시게 되어 언제 다시 뵐지 알수가 없소."
"내 어찌 너희들을 잊겠느냐?"
윤의충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었다.
"너희들이나 나나 고향을 잃고 헤매고 사는 것은 매일반이다. 여진과 고려는 거의 한핏줄처럼 살아왔었다."
"부디 멀리 계시더라도 여진의 핏줄이 끊기지 않게 해줍시오."
손등으로 눈을 씻은 영포가 엎드리자 제장들도 따라 엎드렸다.
"장군 덕분으로 여진족의 기개를 제국에 떨쳤고 황제의 인정을 받아 부족자치도 이루었소이다. 부디 만수무강 하시고 불러만 주신다면 저희들은 만리길도 멀다않고 달려가겠소이다."
"고맙다."
그날밤 윤의충은 제장들과 함께 대취했다. 내일이면 여진장수들은 군사들과 함께 고향인 요양행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광과 만척도 덩달아서 만취했는데 만척은 시름에 젖은 반면에 구광은 오직 술과 옆에앉힌 한인 기녀들에게 정신이 팔렸다.
그에게 고려땅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대륙을 종횡무진하는 지금이 성미에 맞았고 이번에 가게될 감숙행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다음날 오전. 여진족 장졸들을 떠나보낸 윤의충이 다시 영빈관에 들어 섰을때 부장이 다가와 섰다.
"아뢰오. 성밖에 주둔한 고려군 사령과 장수들이 뵙자고 찾아 왔소이다."
머리를 끄덕인 윤의충이 청으로 들어서자 한석기를 비롯한 고려군 장수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총사령께 하직인사를 드리려고 왔소이다."
내일은 고려군도 떠나는 것이다. 한석기는 아예 머리도 들지않고 말했다.
"총사령 덕분으로 고려군사 대부분이 살아서 고향땅을 다시 밟소이다."
윤의충이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원제국의 북방군 총사령이 되었지만 한번도 고려인이라는 것을 잊어 본적이 없다."
그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리고 고려땅을 다시 밟겠다는 꿈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길게 숨을 뱉었다.
"다시 만나게 될것이다. 그동안 전장에서 배운 교훈을 가슴깊이 새겨 갖도록 하라."
그날 밤도 윤의충은 고려군 장수들과 대취하도록 마셨다.
이번에는 만척이 술기운을 빌려 눈물을 흘렸으나 구광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옆에 앉은 기녀에게만 정신을 쏟았다.
"회자정리여."
기녀가 겐네준 술잔을 받으면서 그가 말했다.
"만나면 꼭 헤어진단 말이다. 하지만 넌 오늘밤에 안보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