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신은경(1)
기사입력 1998년 02월 19일 15시 31분
지난해 매스컴에선 신은경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화려한 재기'란 타이틀을 붙였다. 혹독한 시련을 겪은 뒤, 임권택 감독의 `창'에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그녀에 대해 그보다 더 적절한 헤드라인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을 듯싶다.
`종합병원'이란 드라마에 출연할 때 신은경은 통통 튀는 이미지로 `X세대의 전형'으로 불렸는데 어느새 벌써 성숙한 여자의 모습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아역탤런트로 출발, 오랜 무명시절을 지나 이제 정상의 연기자로 우뚝 선 신은경의 스토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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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나이 스물다섯살.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삶이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뭐라고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 평범하지 않은, 굴곡이 심했던 삶이었다.
어떨 때엔 정말 꿈처럼 기쁜 날이 나를 맞아주었고, 때론 어둡고 긴 터널속을 헤매기도 했다.
작년 임권택 감독님의 `창'의 촬영을 시작하면서 나는 극작가인 김정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음주운전 사고가 있은 지 수개월이 지난 후였다.
"전화를 하는 것 자체가 네게 부담이 될까봐 그냥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는 김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김선생님은 내게 그런 사고가 닥쳐오리란 걸 예견하고, 걱정해주었던 분이었다. 당시의 사고는 어쩌면 스물세살에 내가 겪었던 방황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의지했던 분이 김정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 고민을 듣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었고, 많은 조언으로 내게 힘을 주셨다.
그래서 사고가 났을 때 그분에게 제일 죄송한 마음이었고, 다시 뵐 면목이 없었다. 또 그럴수록 나를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사고전 내가 겪었던 방황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 그것은 아역탤런트부터 연기생활을 해온 사람이 아니면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당시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독립'이었다. 열네살 때 아역탤런트로 시작한 나는 연기생활 10년이 가까워오던 93년, 갑자기 회의감과 무기력증에 빠졌다.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여러분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런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을 다시한번 설명하면 어릴 적부터 연기활동만 해온 나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방송국에서 돈을 벌지만 뭐를 얼마를 주고 사야하는 지를 모른다.
어릴 적부터 연기활동만 해온 나는 사회성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연기만 하면 될 뿐이고, 다른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이 처리해준다.
내가 아는 것은 연기 이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사회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장벽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나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나는 나이만 스물을 넘었지 성인이 아니었다.
성인이라면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할 지, 그런 문제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젠 일이 즐겁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급작스러운 독립계획을 부모님이 찬성하실 리 없었다. 나는 말리는 남동생들을 뿌리치고, 옷도 챙기지 않은 채 집을 뛰쳐나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