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8)
기사입력 1998년 02월 19일 15시 31분
바우는 마지막 카드로 `배수진'을 뽑은 것이다.
바우가 막다른 곳에 몰리자 킹은 사기가 더욱 높아졌다.
코너를 빠져나가려는 바우를 가둬두기 위해 빠른 걸음과 주먹을 풀가동했다.
바우의 운명은 이제 모래가 아래로 거의 다 떨어진 모래시계가 됐다.
킹의 공격이 주춤해졌다.
독안에 든 쥐인 만큼 서두를 까닭이 없었다.
이제부터 효과적으로 잡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빠른 발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 만큼 킹으로서는 특기이자 장점을 살리지 못하게 된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바우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킹의 앞발을 살폈다.
킹으로서는 이빨 공격부터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앞발만 피하면 치명상은 입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은 잠깐 멈춘 비디오테이프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상대를 노려봤다.
낮지만 살기 가득한 소리가 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빈 틈을 찾는 눈길만이 소리 없이 부딪혔다.
몇초나 흘렀을까.
킹이 `카앙' 하는 함성과 함께 앞발을 휘두르며 쳐들어갔다.
바우와 킹의 앞발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충돌했다.
그 순간 둘의 입이 맞닿았다.
그러나 누구도 소득은 없었다.
둘이 뒤엉켜 앞발과 이빨을 맞교환하는 사이 바우가 몸을 틀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던 킹이 중심을 잃고 앞발을 땅에 내딛었다.
둘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킹을 벽에 몰아넣은 바우는 위협사격 같은 주먹을 난사했다.
아무리 발이 빠른 킹이라도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똑같이 고정된 상태에서의 싸움이라면 파워와 파괴력에서 앞서는 바우가 월등히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황한 킹은 싸움보다는 위치를 바꾸는 게 급한 상황이었다.
바우의 주먹이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킹을 때렸다.
킹은 주먹으로 커버했지만 충격만은 어쩔 수 없어 몸이 뒤로 더욱 밀렸다.
똑같은 공격과 똑같은 수비가 반복됐다.
킹이 더욱 쪼그라든 모습을 보이자 바우는 몸을 날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