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수첩] 金보다 더 값진 남북 공동응원
기사입력 1998년 02월 18일 15시 31분
한국선수단은 17일 쇼트트랙 경기장인 나가노시내 화이트링에서 두가지 경사（慶事）를 동시에 맞았다.
한가지는 경기장인 트랙위에서의 경사요, 다른 하나는 스탠드에서의 경사였다.
한국선수들이 빙판위에서 그동안의 `노메달' 침묵을 깨고 잇따라 2개의 금메달을 따내고 있을 때 스탠드에서는 지금까지 남북한이 같이 참가한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흐뭇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국응원단이 밴드음악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며 선수들을 격려하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다른쪽에서 북한선수들을 응원하던 조총련계 재일동포 응원단이 어느 사이엔가 한국응원단과 자리를 함께 해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人共旗）를 흔들며 "한국 잘했다"를 외친 것이다.
지금까지 국제회의 석상에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함께 게양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자연스레 한데 뒤섞여 벌인 공동응원은 보기드문 일이었다.
이곳 나가노는 7년전인 91년 4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 지바）를 앞두고 남북단일팀 `코리아'의 오누이들이 한달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훈련을 함께 하던 장소다.
그때 양쪽 선수들은 기회만 있으면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수없이 불렀다.
물론 이날 경기장에 나온 조총련계 동포들이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들이 얼마전같이 한국선수들이나 임원들에 대해 공연한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아무나 금메달만 따면 그게 좋은 거지 태극기냐 인공기냐가 무슨 상관입니까."
인공기를 신나게 흔들다 시상식이 끝나자 경기장을 떠나는 어느 조총련계 동포의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나가노=김석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