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7)
기사입력 1998년 02월 18일 15시 31분
바우로서는 준결승전에 이어 2번째로 겪는 수모였다.
그러나 킹은 성칠과 달랐다.
결승전까지 올라온 선수답게 발도 빠르지만 주먹의 세기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플라이급 발에 헤비급 펀치를 갖춘 셈이었다.
그러나 바우의 전략은 오직 하나, 일발필살(一發必殺) 뿐이었다.
그 한발을 노리고 바우는 주먹을 날렸지만 소득이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우의 온몸은 상처 투성이가 됐다.
스카우트 되어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흉터 하나없이 말끔한 얼굴이었지만 순위결정전이 끝나면 꿰맨 옷처럼 온통 바늘자국이 될 게 틀림없었다.
킹의 주먹은 여전히 폭주기관차의 내연기관처럼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나 준결승전에서 이미 검증된 맷집을 갖고 있는 바우는 끄떡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텼지만 주먹의 파괴력이 있는 만큼 점점 견디기 힘겨워졌다.
허공을 가르는 펀치마저도 뻗기 힘들 지경이 됐다.
바우가 최소한의 공격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수비만 하자 킹의 전략도 바뀌었다.
마치 샌드백을 치듯이 수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공격만 하게 됐으니 더욱 과감해진 것이다.
킹이 잰걸음으로 바우 주위를 돌다가 뒷다리를 노리고 이빨을 들이댔다.
킹의 이빨이 닿는 순간 바우가 다리를 빼며 앞발을 휘둘렀다.
바우와 킹 모두 소득없는 공격이었지만 둘 다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바우가 다리를 물렸다면 그렇지 않아도 없는 기동력에 시동이 꺼지는 셈이었고, 킹이 해머펀치를 맞았다면 그 한방으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특별한 전환점이 없는 이상 바우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바우로서는 `승부수'가 필요했다.
바우는 스스로 궁지에 들어갔다.
킹을 피해 구석으로 쫓겨간 것이다.
울타리와 아파트 벽이 맞닿은 코너에 이르렀다.
바우는 더이상 갈 데가 없었다.
킹은 사기가 더욱 높아져 코너를 빠져나가려는 바우를 빠른 걸음과 주먹으로 막았다.
바우의 운명은 이제 모래가 아래로 거의 다 떨어진 모래시계가 됐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