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세(2)
기사입력 1998년 02월 17일 15시 48분
근위장수의 말을 들은 그가 말에서 내린 윤의충에게 손을 내밀었다.
"칼을 맡기시오."
쓴웃음을 지은 윤의충이 허리에 찬 검을 내밀자 그는 앞장을 섰다. 윤의충은 그를 따라 진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는 숨을 멈추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진막 안에는 백여명의 장수가 좌우로 갈라서 있었지만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안쪽 중앙에 앉은 사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제국의 황제 쿠빌라이가 와 있는 것이다.
총사령 바얀은 단 아래에 서 있었으나 몸을 굽히고는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바얀의 옆쪽에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요양행성 병마절도사는 가까이."
윤의충이 다섯걸음을 떼자 옆에서 황제의 근위장수가 나타나 그를 제지했다.
"무릎을 꿇으시오."
윤의충은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든 그의 정면 십여보 앞에 대원제국의 황제 쿠빌라이가 앉아 있었다.
진막 안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덮여 졌다. 황제가 입을 열기 전에는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쿠빌라이가 다시 낮게 말하자 금박관복을 입은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절도사는 다섯걸음 더 앞으로."
그러자 둘러선 장수와 고관들의 머리가 잠시 술렁대듯 들려졌다가 원상태로 되돌려졌다.
황제와 다섯걸음 거리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제국내에는 열명도 되지 않는다.
총사령 바얀도 일곱 걸음쯤의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윤의충이 다가가 다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을때 쿠빌라이가 입을 열었다.
"네가 하쿠치와 유루칸을 베었느냐?"
"그렇소이다. 폐하."
윤의충과 쿠빌라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쿠빌라이는 둥근 얼굴에 눈이 가늘었지만 정기가 배어 있었다.
이윽고 쿠빌라이의 입술 한쪽 끝이 천천히 치켜 올려졌다.
"내가 만난 고려인 중에서 네가 제일이다."
그가 가볍게 손을 까닥였다.
"조금 더 가까이 오라."
그러자 근위 장수 서너명이 뒤쪽에서 나타나 윤의충의 주위에 섰다.
쿠빌라이는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물러가라."
두 걸음을 더 가깝게 다가가 꿇자 이제는 쿠빌라이의 숨소리도 들렸다.
쿠빌라이가 입을 열었다.
"몽골족에 대한 네 원한을 안다."
"…."
"고려 백성에 대한 네 애정도 알고."
그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윤의충을 바라 보았다.
"나도 너같은 시절이 있었느니라. 원수와 손을 잡은 적도 있었고 내 할아비 칭기즈칸 황제께서는 아내를 빼앗긴적도 있으셨다."
"…."
"감숙성주 카라차르가 아깝게도 전사했다. 그래서 널 감숙행성 병마절도사로 봉한다."
자르듯 말한 쿠빌라이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윤의충이 북방군 총사령을 겸임토록 한다."
그의 목소리가 진막안을 울리자 제장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윤의충도 머리를 숙였다.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었으나 어깨가 떨리더니 곧 온몸으로 번져졌다.
감숙성에는 김영이 있는 것이다. 카라차르와 의형제를 맺었던 사실 보다도 쿠빌라이는 김영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했다.
대제국을 통치하는 쿠빌라이의 용인술이다. 그리고 감숙성 북방에는 오고타이 제국의 하이도가 대군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윤의충이 머리를 들었다.
"어명을 따르겠소이다. 폐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