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세(1)

기사입력 1998년 02월 16일 15시 15분

한수를 건너 바얀의 총사령 본진으로 다가가던 윤의충은 앞쪽에서 달려오는 십여기의 기마군을 보았다. 붉은 깃발을 제각기 등에 꽂고 있는 것을 보면 총사령의 전령단이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들은 윤의충의 앞에 멈춰섰다. 앞장선 장수는 바얀의 직속무장이다.

"절도사는 들으시오！ 총사령의 명이오！"

소리친 전령장수가 윤의충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절도사는 휘하 장졸을 본진 밖 십리지점인 구학산 기슭에 주둔시키도록 하시오. 그리고 단기(單騎)로 총사령의 본진으로 오시라는 명이오！"

"단기라? 부도독과 장수들도 떼어놓고 말이냐?"

"그렇소이다."

던지듯 말한 전령장수는 말머리를 세차게 틀더니 자욱한 먼지를 품으며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부도독 에르케가 옆으로 다가왔다.

"대도독, 소장이 동행하겠소이다."

무언가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것이다.

"바얀 총사령도 소장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오."

그러자 윤의충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부도독은 남아 군사를 정비하시오."

"이런 전례가 없소이다. 단기로 오라는 것이."

"총사령이면 군례를 만들 수도 있소."

에르케에게 장졸을 맡긴 윤의충은 단기로 말을 달렸다. 그가 마악 산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뒤쪽에서 질주해온 두피의 기마가 금방 그의 좌우로 섰다. 구광과 만척이다. 구광은 앞만 쳐다보고 있었으나 만척이 입을 열었다.

"저희들이 모시겠소이다."

"…."

"부도독께서도 모른 척 하셨소이다."

윤의충이 아무말하지 않았으므로 어깨를 늘어뜨린 구광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단기로 오라는 것이 수상합니다. 아예 여진군을 이끌고 본진을 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바얀의 목은 제가 떼지요."

"…,"

"그런후 군사를 끌고 고려로 돌아갑시다. 가서 고려왕과 임연이를 죽이고 장군께서 왕위에."

"시끄럽다."

그의 말을 가볍게 자른 윤의충이 웃음 띤 얼굴을 들었다.

"네놈은 고려 여자가 그리운 모양이다."

"여자를 품은 지도 오래 되었소이다."

"시끄럽다."

이번에는 만척이 그에게 소리쳐 말했다.

"이놈아, 지금이 어느때라고 그따위 말을."

"이 화적놈이 소리는 왜 질러?"

나란히 달리는 세필의 말앞에 일단의 기마군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기마군은 그들을 막으려는 듯 가로로 벌려서 있었다. 앞에 선 장수는 바얀 총사령의 근위장수였다.

"요양행성 병마절도사 아니십니까?"

"그렇다."

윤의충이 대답하자 그가 만척과 구광을 바라보았다.

"단기로 진중에 들어가십시오. 휘하 장수는 이곳에 머무르셔야 됩니다."

머리를 끄덕인 윤의충이 만척과 구광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만척과 구광이 거의 동시에 입을 떼려다가 그의 세찬 눈빛을 보고는 몸을 굳혔다. 윤의충은 근위 장수의 인도로 본진에 들어섰다. 40만이 넘는 대군이 포진해 있는 본진이다. 무수한 군사와 기마군의 대열을 지나 총사령의 진막에 닿자 거대한 진막 앞에 서있던 장수 하나가 윤의충을 맞았다.

"요양행성 병마절도사가 왔소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