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직격인터뷰] 삼성 이적 이순철

기사입력 1998년 02월 16일 15시 15분


다 꺼져 가던 불꽃이 다시 살아났다.

지난해 11월 25일 해태에서 정리 해고된 뒤 영입 의사를 밝혔던 LG마저 등을 돌리고 오갈데 없는 신세로 방황하기를 두달여.

오직 `현역 연장'의 희망 하나만을 간직한 채 나홀로 야구 방망이와 씨름하던 이순철（37）에게 지난 10일 삼성이 입단 제의를 해 온 것.

야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프로 14년차의 베테랑답지 않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이순철을 하일성 위원이 만났다.

하일성 위원（이하 하）:나는 갓 끈 다 떨어진 줄 알았더니 아직 살아 있더군（웃음）.

이순철（이하 이）:모두 주변에서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일단 축하한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이:야구할 때 경험하지 못한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해요. 은퇴한 다른 선수들이 모두 해외로 유학간다고 할 때 답답하기도 했지만 야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저를 받아준 삼성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금와서 하는 얘기지만 너무 쉽게 해태와 결별한 것 아닌가? 그동안 베풀어 준 은혜도 있는데….

이:（고개를 가고 저으며）조금도 해태 구단에 서운한 감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물론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이미 5, 6년전부터 팀을 옮겨 새로운 환경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정식으로 구단에 얘기한 적도 있구요.

하:한편으로 보면 아마추어 때부터 줄곧 최고 선수로 활약해 왔기 때문에 이젠 선수보다 지도자로 친정팀 해태에 몸담는 것도 괜찮았을 텐데.

이:과정이 좋았던 만큼 결론도 아름답게 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오. 하지만 저는 야구가 너무 좋아요. 건방진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평생 야구만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유학이나 지도자를 거절한 것도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이제 삼성에서 뛰게 되었는데, 해태와 삼성은 오래된 라이벌 관계로 이번 삼성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인데.

이: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 같은 야구를 하지만 팀마다 컬러가 다르죠. 삼성에서 저를 데려간 것도 해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삼성과 잘 융화시키라는 주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그렇다면 9차례나 우승한 해태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지.

이:한마디로 위계 질서와 자기 희생입니다. 예를 들어 해태 선수들은 몸이 조금 아프다고 해서 절대로 운동장에서 엄살을 부리지 않아요.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는 뜻이죠. 이런 점이 특히 단기전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하:삼성하고는 언제부터 접촉했지.

이:사실 해태에서 떠나기로 결정한 직후부터 삼성에서 제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다른 여러가지 생각이 있어 거절했지요. 그러다가 지난 9일 오후 서정환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하:부인이 좋아했겠군.

이:그렇게 기뻐할 줄 몰랐어요. 아이가 일곱살인데 눈치가 있는지 얼마전까지 집에 배달되는 스포츠신문을 안보더라구요. 며칠전 제가 삼성으로 간다는 신문기사를 모자가 함께 펼쳐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게 바로 가족의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그동안 선수 생활을 해오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이:타격 정상에 꼭 한번 서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는데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비가 괜찮다는 말은 많이 들어선지 타격도 좋다는 평가를 듣고 싶었는데 제가 능력이 안되는 모양입니다.

하:계속해서 손목부상으로 고생했던 것도 타격왕에 오르지 못한 이유가 된 걸로 아는데.

이:도루 때문이죠. 도루에 신경쓰다 보면 부상을 피할 수가 없어요. 특히 저나 （이）종범이 같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선수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종범이에게도 도루왕이 결정되면 도루를 자제하라고 충고하기도 했어요.

하:얘기를 바꿔서 삼성에 가면 연봉이 꽤 깎일 텐데.

이: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야구만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그 팀을 위해 무보수로 뛸 각오도 돼 있습니다. 지금와서 연봉 깎이는 게 자존심 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프로 야구하면서 돈은 많이 벌었나.

이:이런 말씀 드리면 어떨지 모르지만 프로야구 선수들 극소수를 제외하곤 돈 별로 없어요. 그저 먹고 살 정도이지요.

하:쉬는 동안 훈련은 꾸준히 했는지.

이:헬스클럽에 나가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길이 보이지 않으니 큰 성과야 있었겠습니까. 무등산에도 올라가곤 했는데 IMF 한파로 실직자들이 산을 찾는다고 해 발을 끊었습니다（웃음）.

하:삼성으로 결정된 뒤 친구인 선동열에게 전화했나.

이:가장 먼저 동열이한테 연락했어요. 저보다 더 기뻐하더군요. 사실 동열이는 제가 선수생활 지속 여부로 갈등할 때도 강력하게 선수쪽을 권했던 친구거든요.

하:솔직하게 말해 봐. 야구하고 부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어.

이:집사람한테 미안하지만 야구를 택하겠어요.

하:이거 잘못하면 이혼당하겠는데. 하여튼 야구에 대한 열정 변함없이 간직하고 오랫동안 선수 생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다.

이: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리＝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