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38)

기사입력 1998년 02월 15일 15시 16분


윤의충이 본진으로 돌아왔을때는 유시(오후 6시) 무렵이었다.

장졸들은 지쳐 있는데다가 전상자가 7천명 가깝게 되어서 진중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게다가 감숙성주 카라차르가 전사한 것이다. 감숙행성의 장졸들은 이제 주인을 잃은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오늘의 전투는 아군의 승리였다.

송군은 2만여의 전상자를 낸데다가 장세걸의 부장 주포산도 구광에게 베임을 당한 것이다.

원군의 대장 바테이가 기병 5만을 이끌고 본진에 도착한것은 해시(밤 10시) 무렵이었다.

바테이는 몽골인으로 윤의충의 부도독 에르케와 동향 사람이다. 진막으로 들어선 바테이가 윤의충에게 다가가 섰다.

그도 대도독이니 윤의충과 동급이다. 그가 윤의충을 향해 예를 보였다.

"대도독, 오늘의 전공을 축하드리오."

머리를 돌린 그가 옆쪽에 서있는 감숙성군의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카라차르 대도독께선 애석하게 되셨소이다. 허나 원제국의 역사에 이름이 길이 빛날 것이오."

진막 안에 모여선 수십명의 장수들은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은 원군이 강을 건너 왔더라면 장세걸의 군세를 궤멸 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카라차르도 전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있는 것이다.

윤의충이 입을 열었다.

"잘 오셨소이다. 내일의 결전에서는 승부가 나게 될것이오."

그러자 바테이가 마른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렇소이다. 그래서 바얀 총사령께서는 오늘 전투로 지쳐있는 감숙성군과 요양성군은 강건너 본진으로 철군 하라는 명을 내리셨소. 지금부터 이 전장은 내가 지휘합니다."

"무슨 소리요！"하고 버럭 고함을 치며 나선 장수는 에르케이다. 눈을 부릅뜬 그가 바테이를 노려보았다.

"이제 다 이긴 싸움으로 내일은 창을 뻗기만 하면 송군을 제압할 수가 있소. 그런데 우리더러 철군 하라구? 밤나무를 힘들여 흔들었더니 대도독은 밤을 줍기만 하시려는거요?"

"닥쳐라！"

눈을 부릅뜬 바테이가 선채로 발을 굴렸다.

"감히 뉘 앞이라고 입을 놀리는거냐?"

"부도독이 대도독에게 말하는 것이오."

에르케도 눈을 부릅떴다.

"황제폐하 면전에서 따져 봅시다. 강건너에서 우리가 밀고오는 것을 보고도 사타구니를 긁고 앉아만 있었던 이유를 알아야겠소."

"무엄한 놈！"

바테이가 칼자루를 잡았으나 뽑지는 않았다. 제 아무리 항명이라 할지라도 부도독을 벨수는 없는 것이다.

에르케의 분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그는 앞에 놓인 걸상을 걷어찼다.

"내가 이십여년 전장을 다녔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이야！ 우리는 강을 건너오는 원군 오천만 있었어도 오늘도 싸움을 끝낼수가 있었어！"

"그만 둬라."

윤의충이 입을 떼자 에르케는 풀무같은 숨을 뱉으면서 한걸음 물러섰다.

윤의충이 바테이를 바라보았다.

"보군은 얼마나 건너 옵니까?"

"총사령 직속의 보군 10만이 오늘밤 안에 건너올 것이오."

아직도 얼굴이 벌건 바테이가 말하자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는 고려보군을 데리고 철군 하겠소. 그들도 지쳤소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