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2)김종환
기사입력 1998년 02월 13일 15시 05분
서울 아현동은 내가 태어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고향이다. 교사생활을 하셨다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기억에 없다. 당시 한강에서 수영복 모델촬영을 했을 정도로 미인이셨던 어머니는 당신이 연예계쪽 일을 잠시 하셨던 까닭에 나의 음악활동에 대해선 특별히 반대가 없으셨다.
늘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하신 어머니는 85년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을 치르고 내 수중에 남은 돈은 30만원. 오랫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나 하숙생이 됐다.
야간업소를 전전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던 내게 기회가 온 건 86년. 신현대 선배의 소개로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골목길'을 불렀던 이재민씨와 친분있던 DJ들이 함께 부른 앨범이었다.
한여름 여의도 사무실 옥상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을 하는 내가 기특했든지 제작자는 나의 자작곡 `전화해요'를 앨범 타이틀로 올렸다. 꽤 인기를 끌었었는데 알려질만 할 때 앨범을 접는 바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또 한번의 기회를 기다렸다. 드디어 89년 코리아 뮤직에서 연락이 왔다. 민해경씨의 판에 들어갈 빠른 노래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야간업소에서 밤을 새워가며 만든 곡이 90년에 히트한 `미니 스커트'다.
이 일을 계기로 신생 희지레코드사와 3년 계약을 체결했었다. 계약금 1천만원을 받자 어찌나 기쁘던지. 그간 고생이 스르르 사라지는 듯 했다.
그해 첫 독집과 함께 옴니버스 앨범 `개구리와 코끼리의 사랑이야기'를 함께 발표했다. 건전가요를 지향했던 4인조 혼성 `개코사'(당시 인기높던 `노찾사'를 따라 붙인 것)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독집 타이틀곡 `쉴 곳 없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희지 레코드사가 그만 덜컥 부도를 난 것이다. 난 1년을 밤낮으로 방송사를 홀로 뛰어다녔다. 그때 알던 이들은 나를 `독립군'이라 부른다. 매니저도 없이 내가 나 자신을 PR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한번은 모방송사 라디오 스튜디오 앞에 지쳐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이가 슬며시 물어왔다. "어떤 가수 데리고 있어요?" "아? 예, 김종환이라구요." 몇달만에 내 노래를 틀어준 모 PD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다음엔 김종환이 한번 데리고 와봐"라며 타박을 들은 적도 있었다. 다들 홀로 다니던 나를 매니저로 알았던 것이다.
90년은 여러차례 희비가 엇갈렸던 악몽의 해다.
84년부터 6년을 꼬박 모아 산 집을 6개월만에 날린 것도 그 해 일이다. 야간 업소 봉급을 모아 집을 마련했더니 주위에선 "지독한 놈"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3천만원을 들여 인천 만수동에 24평짜리 단독주택을 샀다. 문패를 붙이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밤새 술을 마셨다.
다음날 중학교 동창이 과일을 들고 나타났다. 전날 세제를 사왔던 녀석이었다. 그는 내 집을 담보로 자신의 빚보증을 서달라고 했다. 보증이 뭔지 몰랐던 나는 시키는대로 여기저기 도장을 꾹꾹 눌러줬고 꼭 6개월 뒤 법원에서 날아온 노란색 봉투를 받았다. 그렇게 나의 6년 피땀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