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레이더] 넘치는 인파 정동진 몸살
기사입력 1998년 02월 13일 15시 05분
★…`이제 낭만의 정동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파도가 철썩이는 한적한 모래사장. 그림처럼 날아다니는 갈매기 한두마리. 그리고 동화처럼 서있는 작은 역사(驛舍).
3∼4년전 동해바다를 여행해 본 사람들은 정동진을 그렇게 조용하고 분위기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런 정동진은 지금은 없다.
강원도 강릉시와 동해시의 중간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 정동진이 지난해 봄부터 해돋이 여행 명소로 급부상한 가운데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의식있는 나그네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역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테마 음악 `백학'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와 파도소리를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한다.
주말이면 수천명의 나들이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역 주변과 바닷가는 장터처럼 붐빈다.
역앞은 노점상들의 천국.
`최민수 핫도그' `이정재 번데기' `고현정 오뎅' 등 모래시계 주요 등장 인물의 이름을 딴 음식을 파느라 시끌벅적하다.
마을이 워낙 작아 비둘기호만 정차했으나 올들어 무궁화호까지 들러 많은 사람들을 내려 놓고 간다.
바닷가로 나가기 위해 역을 나서자마자 `민박집 있다'며 추근대는 호객꾼들도 거슬린다.
대개 푸른색 트레이닝복에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나 중년의 아주머니인 이들은 방 하나에 3만원까지 바가지를 씌우기 일쑤여서 정동진 여행객들의 `경계 대상 1호'가 되고 있다.
대학시절 이후 4년만에 정동진을 다시 찾았다는 김도희씨(28)는 "자본의 논리가 한적한 바닷마을을 완전히 뒤바꿔 놨다"며 탄식했다.
역무원들도 잠깐만 한 눈을 팔면 위험한 철로위에 걸터앉아 소주를 마시거나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을 만류하느라 동분서주.
꼭두 새벽부터 역사 문을 열어달라고 두들겨대는 막무가내파들도 골칫거리다.
바다도 변했다.
전에는 가끔씩 보이던 갈매기들이 이젠 떼로 몰려다닌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가 좋은 먹이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것은 장엄한 일출과 철썩이는 파도 뿐.
정동진은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로 중병을 앓고 있다.
[정동진＝송철웅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