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외교관 꿈 접고 노래날개 훨훨'
기사입력 1998년 02월 13일 15시 05분
쌓아 둔 눈까지 녹아, 구질구질한 서울의 거리. 그위로 피어난 개나리－가수 양파(이은지．19).
벌써 봄인가? 그는, 마악 `여행에서 돌아온 방랑자'처럼 조금은 가라 앉아 있었다. 아니, 가만히 손을 내밀며 어느 누구에겐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봄인가? 그런데 봄은 때때로 겨울보다 느끼하다. 추운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중용은 편견보다 더러는 가증스럽다."
초롱초롱한 눈빛. 카랑카랑하고 또렷한 목소리.
인터넷에 수시로 뜨는, `양파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詩)'들. 팬클럽 `양파 패밀리'는 줄잡아 1천여명.
당연히 고교생들이 주류.
`공부도 똑소리나게 하고, 청순하고…. 흑인풍의 창법은, 왠지 `올드 블랙 조'나 `앵클 톰스 캐빈'을 떠올리게 한다. 그 애잔한 여운….'
`우리 또래의, 여고생 가수라서… 더욱 정이 간다.'
이들은 `양파 공연' 땐 더욱 부산해 진다. 서울은 물론이고 부산이나 대전, 제주에서까지 달려 온다. 공연장으로, 공연장으로.
주류들은 때때로 `양파 비평'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냉정하기까지 하다.
`나이도 어린데, 웬 드레스?' `캐주얼을 걸쳐라.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살려라.' `더이상, 그 지긋지긋한, 공주병은 안된다.'
`양파 패밀리'엔 초등학생이나 회사원들도 끼여 있다. 회사원들과는 몇번인가 미팅도 가졌다. `세대차'는 못느꼈다고.
양파. 오는 15일이면 고교(서울 중경고)를 떠나야만 한다. `여고 시절'은 과거 속으로 떠밀리고….
"막연히 외교관이 꿈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가수'… `괜찮은 가수'가 되고 싶다."
지난해 11월19일. 수능시험. 서울 이촌동 용강중. 2교시 수리탐구영역 시간. 양파는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그리곤 이내 쓰러 졌다.
인근 금강병원으로 옮겨졌다. 장유착증. 수술후 꼬박 보름을 병원에 눌러 있어야야만 했다.
"스케줄에 쫓겨, 제때 식사를 한 적이 별로 없다. 이게… 수능시험을 볼때만 해도 정치외교학과를 가려 했는데… 어른들이 툭하면 내뱉는 `운명 타령'에 난생 처음 공감이 갔다."
양파. 고3 모의고사에서 한때 320점도 받아 냈다.
중학생 때부터 휘트니 휴스턴에 빠졌다. 음울하고 슬픔에 젖은, 휘트니 휴스턴의 분위기에 때때로 목이 메었다.
어느덧 `아윌 올웨이스 러브유'는 가슴에 녹아 내렸다. `노래 잘하는 아이'라는 레테르가 붙었다.
고1 첫학기. 누군가의 소개로 `신촌 뮤직'에서 오디션을 봤다.
`신촌뮤직' 사장－코미디언 장고웅은 `아윌 올웨이스 러브유'를 들은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좋은데… 너무 어리잖아. 더 큰 다음에 올래? 공부나 해라.'
고 2. 여름방학. LA로 달려가 `데뷔곡'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애송이의 사랑'.
이듬해 1월. 제1집 `애송이의 사랑'은 전파를 탔다. 반응은 폭발적. 2개월후엔 MBC, KBS 등의 각종 가요차트 1위에 올랐다.
97년. `양파의 해'였다. 연말엔 각종 `여자신인 가수상'을 휩쓸었다. 엉겁결에 `유명가수'가 돼있었다.
그러나 시련도 없지 않았다.
1집의 `스위트 나인틴 펑키'. 이게 일본의 아무르 나미가 부른 '스위트 나인틴 블루스'를 표절했다는 거다.
"기도 안찼다. 제목만 비슷할 뿐. 내건 리름이 빠른 펑키곡이고 아무르 나미의 것은 블루스곡인데…."
시련은 겹쳐서 찾아 온다.
제 2집 `알고 싶어요'.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와 제목이 같다는 이유로 또 도마에 올랐다.
양파. 1m62. 48㎏.
제 1집에 담은 `천사의 시'. 자기 노래 중에서도 더욱 정이 간다.
`많이 지쳐 있는지 어두워 보여요/삶이 그대를 또다시 속이려 하나요/언제나 그댈 위로할 순 없지만….'
제 2집엔 `믿지 못할 세계' `소유' `다시 우리' 등도 담겨 있다.
양파. 너무 바쁘다. 그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없다.
움직이는 휴게실－밴에서 비디오로 보는 게 고작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정말 좋았다.
"단조로운 톤, 간단명료한 언어, 비작위적인 구성 등이 정말 좋았다. 내친김에 같은 감독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도 봤다. 역시 좋았다."
최근에 독한 맘 먹고 본 영화 `마르셀의 추억'도 너무 괜찮았다. 첫사랑, 우정 등이 크리스털을 보는 듯했다.
가수 양파. `일만은, 양보못하는' 프로.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아 선배들도 아껴준다.
요즘은 가수 머라이어 케리의 `히어로'를 즐겨 흥얼댄다.
"가끔씩 날고 싶다. 철새보다 더 자유롭게. 떠나고 싶다 `부초(浮草)'보다 더 허허롭게…."
[서병욱(부국장대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