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김종환(1)
기사입력 1998년 02월 12일 15시 23분
오랫동안 무명시절을 딛고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가수 김종환(33). `존재의 이유' `사랑을 위하여'의 연속 히트로 성인가요 부활에 불을 댕긴 주인공이다. 불황속 지친 서민들을 쓰다듬는 아름다운 노래로 30,40대 중년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 김종환의 역경탈출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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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정동문화예술회관 콘서트 때 일이다.
무대 뒤 대기실로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찾아왔다. 내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반가워하는 품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연변에서 날아온 분들이었다.
`영원한 팬'이라고 거듭 강조해 나를 감격하게 만든 이들은 내가 연변지역 최고 인기가수며 `사랑을 위하여'가 최고 인기곡이라는 굉장한 소식을 안겨주었다.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때론 힘들고 지긋지긋하지만 이렇듯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도 오게 마련인 것이다.
콘서트 때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절망의 끝에 서있어도 한가닥 희망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살 길은 반드시 있다. 결코 죽으라는 법은 없다. 나의 길지 않은 삶을 되짚어봐도 여러번 증명이 되는 말이다.
나는 지난 96년까지 만 15년간 야간업소를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5군데를 뛰어다녔으니 하루 평균 어림잡아 50곡 정도는 부른 셈이다. 10년을 넘게 그렇게 단련돼서인지 노래를 많이 해 목이 쉰다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잘난 척 한다고 욕할 지 모르겠지만 요즘 하는 두어시간 공연은 정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간업소 가수는 다양한 레퍼토리가 생명이다. 콘서트를 지루하지 않게 여러가지 노래로 채울 수 있는 것도 그 시절 고생한 덕이다. 지금도 북한 노래만 빼곤 전세계 히트곡이 다 내 노래다. 통기타 반주로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곡만 1천여곡 정도 되는 듯싶다.
나의 밤무대 역사는 중3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나이에 비해 좀 들어보인다는 말을 듣는 나지만 용산중학교 시절 `빛나리' 머리만 아니라면 대학생이라고 해도 곧이들을 만큼 덩치도 크고 늙수그레(?)했다.
7살때부터 기타를 잡았던 난 그시절 어디서건 노래를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난 나의 용모를 십분 이용해 야간업소로 눈을 돌렸다.
가발을 쓰고 삼촌 옷을 입었더니 그럴싸했다. 당장 청량리 야간 업소에 취직이 됐다. 통기타를 들고 좋아하는 팝송을 부르니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한달도 못돼 들통이 났다. 그다지 정교하지 못했던 가발 탓이었다. 빡빡머리 위에 핀도 안꽂고 대충 엎어놨던 가발이 노래에 심취해 있는 동안 돌아가 버린 게 아닌가. 앞가리마는 뒤로 돌아가고 뒷머리가 시야를 가리는 사태가 벌어져 주인에게 엄청 욕먹고 그길로 잘렸다.
유일한 무대를 잃고 상심해 있던 난 곧 주위의 지음(知音)을 모아 밴드를 조직했다. 교회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문학의 밤을 겨냥해 겁나게 연습했다. 그날밤은 그야말로 광란이었고 난 업소에서 잘린 한을 원없이 풀었다. 그날 공연을 끝으로 밴드가 해체됐음은 물론이다.
수험생으로 조용히 고교시절을 보내고 드디어 대학생이 됐다. 신흥대 행정과 83학번이었던 나는 수업은 제쳐두고 종로 청량리 명동 등지의 음악감상실에서 열심히 DJ를 봤다. 나머지 시간은 대학가요제 준비에 바쳤다. 내리 2년을 갖가지 가요제 예선에서 떨어져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