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2)
기사입력 1998년 02월 12일 15시 22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바우로서는 공격은 그만두고라도 수비조차 힘들었다.
이따금씩 주먹을 휘두르지만 목표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위'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성칠의 주먹은 여전히 피스톤처럼 오갔다.
사육사들이 바우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경기중단'을 선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를 강행시킨 또다른 까닭은 바우의 피해가 얼굴에만 국한됐을 뿐 결정적으로 급소를 물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칠의 주먹이 뜸해졌다.
주먹만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상대의 맷집으로 보아 목의 앞부분이나 아랫배 등을 물어뜯어야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칠의 전략 수정은 바우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반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우는 주먹을 아꼈다.
쓸데없는 체력소모보다는 결정적일 때 `한방'으로 승부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야도 확보됐다.
`상대는 생각보다 강하다. 우선 피하면서 틈을 찾자.'
바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당했던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싸움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긴장감은 훨씬 더했다.
바우나 성칠 모두 판정승이 아닌 KO승을 노리는 탓이다.
그러나 성칠은 시간이 흐를수록 바우가 유리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의 `점수계산'을 한다면 성칠의 일방적인 승리지만 왕을 가리기 위한 준결승전인 마당에 점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심리적으로 승리를 확신한 성칠이 또다시 주먹을 뻗었다.
주먹에 이어 이빨을 목에 박기 위한 예비펀치였다.
주먹이 들어오는 순간 바우는 몸을 뒤로 뺐다.
성칠은 주먹이 적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계획했던 대로 공격했다.
성칠의 이빨이 바우의 목 밑으로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