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35)

기사입력 1998년 02월 11일 15시 44분


"놈은 감숙성군의 측면 공격을 알아챈 것이오."

에르케가 길게 탄식을 했다.

"이제 우리는 각개격파 하는수 밖에 방법이 없소."

윤의충이 뒤에선 고려군 사령 한석기를 바라보았다.

"장군, 고려보군을 5리 앞으로 전진 시키시오."

그는 손을 들어 앞쪽의 낮은 구릉을 가리켰다.

"저 구릉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진을 치시오."

"얼마나 이끌고 나서리까?"

"반수 병력으로. 그래서 장세걸의 기마군을 막으시오."

"알겠소이다. 대도독."

한석기는 더이상 물어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눈을 치켜뜬 에르케가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대도독, 그렇게 되면 지원군이 들어설 자리가 없소이다."

"지원군은 오지않소."

자르듯 말한 윤의충이 입술 끝만 비틀고 웃었다.

"바테이가 한수 건너편에 당도 한것은 어제 저녁이오. 지원할 뜻이 있었다면 벌써 우리와 합류해 있을거요."

"그게 무슨."

에르케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제국의 내부사정을 모를리가 없는 것이다. 장세걸은 반으로 나뉘어진 3만 기병을 끌고 곧장 윤의충의 정동행성군을 목표로 다가왔다.

3만 기병이 울리는 말굽소리가 마치 지진이 난것처럼 들려졌다.

밋밋한 평원 위에 낮은 구릉이 부드러운 물결처럼 펼쳐진 전장이다.

기마군이 3리쯤 전진했을때 전령이 달려왔다. 척후장수가 보낸 전령이다.

그가 숨가쁘게 보고했다.

"장군, 5리 앞에 고려보군이 길을 막고 있소이다."

"기마군은 어디 있느냐?"

"보이지 않소이다."

"보이지 않다니?"

버럭 소리친 장세걸이 전령을 노려보았다.

"윤의충의 기병단이 도망쳤단 말이냐?"

"고려 보군이 방책의 5리 앞으로 나와 막 동서로 벌려서고 있는 중이오."

그러자 장세걸이 지휘채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윤의충은 카라차르를 구원하러 갔다. 전군을 우측으로 돌려라！"

버럭 소리치자 옆을 따르던 고태사가 물었다.

그는 모략과 작전에 뛰어난 병법가였다.

"장군, 윤의충의 뒤를 치는것도 좋으나 그렇게 되면 7만 군세를 적절하게 운용하지 못하게 되오. 군세를 나눠 이길로 곧장 고려군을 치는 것이."

"고려보군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자르듯 말한 장세걸이 말에 박차를 넣었다.

"윤의충과 카라차르 두놈이 한 웅덩이로 들어왔다. 기회를 놓칠수 없다."

고태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도 윤의충의 의도를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장세걸의 말이 맞는 것이 이곳은 영토에서 떨어진 전장이다.

고려보군의 방어선을 뚫는다고 해도 승부가 나는 것도 아니고 이쪽은 보군의 지원이 따르지 않는 상황이라 피해가 커질 것이다.

말을 달려 장세걸의 옆에 붙어선 고태사가 소리쳐 말했다.

"이제 알았소. 과연 윤의충은 교활한 놈이오. 고려 보군을 털끝하나 다치지 않게 만들었소이다."

카라차르는 이미 장세걸의 부장 주포산의 군세를 맞아 혼전중이었다.

주포산도 남송제국이 골라뽑은 용장이다. 그는 군세를 기마군 5천씩 여섯대로 나눠 파도처럼 밀려왔는데 이쪽의 장졸들이 분전했으나 중과부적 이었다.

군세가 밀리기 시작할 때였다. 누군가 소리쳤다.

"요양행성군이 온다！"

본진에 있던 카라차르도 그 소리를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