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이방인' 안성기의 내면연기 절정
기사입력 1998년 02월 11일 15시 44분
폴란드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이방인'(기획시대 제작)을 연출한 문승욱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폴란드 우츠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문 감독은 지난 94년과 95년 `어머니'와 `오래된 비행기' 등의 단편영화로 서울단편영화제에서 2년 연속 수상하면서 국내에 소개된 인물.
문 감독은 실제 폴란드에서 살고 있는 한 태권도 사범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태권도 사범 김(안성기)은 아내와 딸과 떨어져 10여년간 유럽을 떠돌면서 혼자 살아온 사내. 오랜 이국생활은 그를 더욱 외롭게 한다.
바르샤바. 동유럽의 쓸쓸한 풍광에 묻혀 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소매치기를 당한 욜라(에바 가브뤼룩)를 도와주면서 맺은 인연으로 잊혀진 사랑의 감정을 되찾는가하면 카오디오를 훔치는 불량청년 미하우(파베우 브르직크)에게서는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김과 욜라의 만남은 매우 동양적이다.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마음을 여는데도 인내와 절제의 과정을 겪는다.
둘의 안타까운 사랑은 주변과 단절된 이방인의 외로움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욜라가 지친 현실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나, 이를 바라보는 김의 담담한 시선 등이 이러한 장면들.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등의 영화를 촬영했던 촬영감독 안제이 야로쉐비츠의 유려한 영상은 둘의 사랑을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아름답게 채색해낸다.
`이방인'에서는 특히 국민배우 안성기의 완숙한 연기와 만나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완벽한 폴란드어 대사는 물론이고, 이방인의 외로움을 온몸으로 표출해내는 내면연기는 영화의 무게를 더해주는 절대조건이 되고 있다.
특히 영화 전체에서 2번 보여지는 택견 장면은 `아름다운 무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장면을 위해 5개월동안 택견수련을 쌓아왔다는 안성기의 프로근성이 실감난다.
드라마를 따라가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가 `이방인'이다.(14일 명보 허리우드극장)
[이창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