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1)
기사입력 1998년 02월 11일 15시 44분
다음 대결은 바우와 부산 출신의 성칠이었다.
둘은 국내파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성질이나 생김새는 전혀 딴판이었다.
바우가 고고한 무인 스타일이라면 성칠은 어릴 적부터 싸움으로 잔뼈를 키워온 싸움꾼이었다.
성칠의 얼굴과 온몸에 있는 크고 작은 상처는 그의 화려했던 지난날을 나이테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태권도 유단자와 싸움 유단자가 붙으면 싸움 유단자가 이긴다'는 말이 있다.
싸움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이기기 위한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성칠과의 대결에서 바우는 뜻밖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성칠을 보아온 바우가 단단히 손을 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투지에 관한 한 성칠도 뒤질 까닭이 없었다.
국내파끼리의 준결승전은 초반부터 불꽃 튀었다.
선제 펀치는 역시 주먹이 빠른 성칠의 몫이었다.
결투장소인 간이방사장에 먼저 나가있던 성칠은 바우가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주먹을 안긴 것.
어두운 아파트에 있다가 나와 밝은 봄빛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바우의 빈 틈을 노린 것이었다.
싸움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운동이나 하는 줄 알고 나온 바우로서는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성칠은 과연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선제공격의 성공으로 주도권을 잡자 현란하게 빠른 주먹으로 바우의 넋을 빼앗았다.
전광석화 같은 주먹이 바우의 얼굴에서 콩 볶듯 튀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스피드와 무게는 반비례했다.
만약 성칠의 주먹이 바우만큼 중량감이 있었다면 승부는 바우의 KO패로 일찍 판가름날 뻔했다.
바우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성칠의 노련함이 허용하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잔 펀치 앞에도 장사가 있을 수 없었다.
바우의 얼굴은 이미 크고 작은 상처로 초토화됐다.
그러나 문제는 상처 따위가 아니었다.
눈 부위가 긁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