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10)
기사입력 1998년 02월 10일 15시 43분
장쇠의 주먹은 모래 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확실히 둔해져 있었다.
그때부터 승부는 `흑과 백'으로 선명하게 나뉘었다.
킹이 사이드스탭을 밟으며 장쇠의 초점을 흐려놓았다.
장쇠의 주먹은 허공의 바람만 가를 뿐이었다.
그럴수록 장쇠는 더욱 지쳤다.
킹의 `발'은 공격보다 무서운 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슬로모션 같은 장쇠의 몸놀림은 배터리가 방전된 장난감 로봇이 됐다.
한동안 공격을 하지 않고 스탭만 밟던 킹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
킹의 주먹이 번쩍이는 순간 장쇠는 한줄기 섬광(閃光)을 보았다.
헤비급의 잽은 주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파괴력을 갖게 마련이다.
게다가 잽에 이은 다음 주먹마저 명중한다면 승부는 사실상 끝나게 된다.
첨병이 길을 열고 본진이 점령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쇠가 섬광 다음에 느낀 것은 하늘이 돌아가고, 땅이 흔들리는 현기증이었다.
이제 섬광마저 보이지 않았다.
마음먹고 휘두른 킹의 해머펀치가 정통으로 작렬한 것이다.
킹의 포효소리마저 먼 곳에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장쇠는 공격과 수비 등 전투에 필요한 몸동작은 커녕 네발로 서있기조차 힘들게 됐다.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었다.
덩치가 큰 사자라서 그 정도이지 송아지 정도의 동물이라면 목뼈가 부러졌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상대가 전혀 수비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린 킹은 마음놓고 이빨을 앞가슴에 박았다.
게다가 가장 부드러운 뱃가죽에는 포크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꽂혔다.
킹은 앞발에 힘을 주어 장쇠의 배를 아래쪽으로 밀어내렸다.
밭고랑 같은 상처가 붉은 `피고랑'을 이루었다.
패트롤카는 그제서야 킹의 KO승을 선언했다.
다음 대결은 바우와 부산 출신의 성칠이었다.
둘은 국내파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성질이나 생김새는 전혀 딴판이었다.
바우가 고고한 무인 스타일이라면 성칠은 어릴 적부터 싸움으로 잔뼈를 키워온 싸움꾼이었다.
성칠의 얼굴과 온몸에 있는 크고 작은 상처는 그의 화려했던 지난날을 나이테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