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성직격인터뷰] 정석 'ML적응 자신있다'

기사입력 1998년 02월 09일 15시 23분


11일 미국행을 앞둔 LA 다저스 정 석. 아마시절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한 선수여서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다. 그러나 무명시절을 벗고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 정 석의 각오는 남다르다. 박찬호가 소속된 LA 다저스가 100만달러를 주고 스카우트해 한국 야구계를 놀라게 한 정 석과 하일성 본지 해설위원이 만났다.

하일성위원（이하 하）:우선 축하 악수부터 하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엊그제（7일） 전역했다고 사단장과 면담할 때의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하냐. 정 석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 자랑부터 해보지.

정 석（이하 정）:특별히 내세울 점은 없습니다.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서 사랑하는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기쁩니다. 또 수많은 무명선수들에게 `꿈을 가지고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 통쾌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하:메이저리그 팀에서 뽑아갈 만한 좋은 선수라면 국내에 있을@때는 왜 주목을 못 받았는지 궁금한데.

정: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공 빠르고 컨트롤 좋다는 칭찬은 들었어도 스스로 한계를 그었죠. 국가대표나 메이저리그 진출은 박찬호같은 선수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똑같은 직구라도 `피해야 하는데'라며 던지는 것보다 `칠테면 쳐봐라'는 식으로 던져야 안맞지요. 상무에서 뛰면서 이것을 터득했습니다.

하:그렇다면 `알아주는 선수'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정:2년간 군생활 내내 TV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야구경기는 봤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했습니다. 목표는 국가대표였습니다. 작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와 4개국 초청대회에서 2번이나 일본을 이기고 나니 `나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하:무명이라 설움도 많았을 텐데.

정:2년전 동국대를 졸업할 때 2차 지명한 삼성 사무실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무척 동경했던 팀이지만 결국 몇천만원짜리 선수에 걸맞은 대접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삼성 입단을 나중으로 미루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는 삼성 사장님이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작년에 그 꿈을 이뤘습니다. 삼성 사장님이 5억원을 들고 찾아오셨거든요.

하:너무 심각하다. 분위기를 바꿔 보자. 결혼은 언제 할 예정인가.

정: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뒤입니다.

하:그렇게 단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 어려울 때 함께 할 사람이 있어야지 야구를 더 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웃음）.

하:같은 팀에 동기생 박찬호가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정:찬호는 노모나 발데스처럼 경쟁을 벌일 다저스 투수 가운데 한명입니다. 내가 박찬호와 함께 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자리는 누군가 대신할 겁니다. 그렇다고 보면 찬호는 나에게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겁니다.

하:사고 방식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뛰기에는 너무 가냘퍼 보이는데.

정:체중을 더 늘려야 하는데 살이 잘 안찌는 체질입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에 전력을 다할 수 밖에요.

하:무명시절을 경험했다는 것은 정신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큰 경기에 약하다는 결점도 되는데.

정:큰 무대에 서면 떨리는게 사실이지만 언제부터인가 큰 구장과 많은 관중이 나를 흥분시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도 이제 겨우 출발 선상 아닙니까. 어차피 잃을 것도 없습니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일 기회가 될지는 몰라도.

하:빠른 공보다 컨트롤이 주무기인 정 석선수의 스타일에는 일본이 더 어울리는 것 아닐까. 일본에서도 입단 제의가 있었다는데 왜 메이저리그를 택했나.

정:임선동을 지켜보며 아무래도 일본행은 어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는 어릴 때부터 내 꿈이었습니다.

하:요즘같은 IMF 시대에 정 석 선수와 같이 달러를 번 사람이 가장 횡재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다 쓸건가.

정:나는 돈에는 관심 없습니다. 5만달러를 받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뛰는게 낫죠.

하:돈에 관심없다니 그렇게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나. 어떻게 보면 목표 의식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정:사실 좋은 환경에서 커 왔지만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구를 최대한 오래하는 게 꿈입니다.

하:솔직히 말해 달라. 본인 말고도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등 많은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했는데 누가 가장 먼저 메이저리그에 적응하리라 보는가.

정:이건 말하면 안되는데. 당연히 제가 가장 가능성이 많죠. 그러나 나머지에 대해서 순위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하:메이저리그에서 살아 남으려면 사실 건방지게 보일 정도로 자신이 넘쳐야 한다. 그 점에는 일단 합격한 것같다. 곧 마이너리그 생활이 시작될 텐데 상상하는 것보다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열심히 해 좋은 선수가 되길 바란다.

정:많은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정리＝전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