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태초의 혼란(9)
기사입력 1998년 02월 09일 15시 23분
다행히 까미의 부상은 크지 않았다.
바우의 `핵펀치'가 쏟아지기 직전 사육사들이 뜯어말렸기 때문이다.
바우가 좌우 연타에 이어 목덜미를 물어뜯자 패트롤카는 거칠 것 없이 밀어붙였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쇳덩어리'의 무차별 공격에 놀란 바우는 백수의 왕이라는 체면도 팽개치고 꼬리 빠지게 달아났다.
승부가 결정된 뒤 아파트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자 까미는 혼비백산해서 들어갔다.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1차 예선전이 끝난 셈이다.
같은 방식으로 예선전이 거듭됐다.
사육사들의 예상은 거의 들어맞았다.
준결승에 오른 4강은 바우를 비롯해 아프리카에서 온 킹, 미국에서 온 장쇠, 부산에서 올라온 성칠 등이었다.
대진표는 다시 결정됐다.
국내파는 국내파끼리, 해외파는 해외파끼리 각각 붙여 챔피언 결정전을 세계 대결로 장식하기로 했다.
4강전은 시작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이미 한번씩 예선전을 치른 이들은 모처럼 피를 본 뒤여서 살기와 투지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킹과 장쇠가 첫번째 준결승 카드였다.
이들은 같은 날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에 온 데다 공항 검역소에서 같이 지낸 경험이 있어 입사 첫날부터 친하게 지냈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왕을 가리는 마당에 사사로운 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야성(野性)이 고개 든 독사처럼 꼿꼿하게 되살아난 상황이 아닌가.
아프리카와 미국 대표의 승부는 초반부터 불꽃 튀었다.
덩치와 파워가 비슷한 만큼 팽팽하게 전개됐다.
다만 스피드에서 킹이 조금 앞섰다.
팽팽한 균형일수록 아주 작은 요인으로 무너지게 마련이다.
초반에는 킹이 한대를 치면 장쇠도 치고, 한번 물리면 뒤질새라 무는 형국이었다.
좀처럼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킹의 스피드가 빛을 낸 것은 바로 이때였다.
몇차례 펀치 교환으로 지구력이 바닥이 났을 때 킹의 주먹이 장쇠의 얼굴에 꽂혔다.
그러나 장쇠에게서 `답장'이 뒤늦게 날라오자 킹의 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