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주유후 줄행랑 차 속출
기사입력 1998년 02월 08일 15시 27분
`늦은밤 미등을 끈 차량을 조심하라.'
고속도로나 지방국도로 빠지는 서울 외곽의 주유소에 비상이 걸렸다.
기름을 가득 채운뒤 직원이 주유구를 닫는 순간 부리나케 도망치거나 호스를 제자리에 놓는 사이에 내빼는 `기름도둑'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중부고속도로 초입에 있는 S주유소의 김철원씨（24）는 "한달에 2∼3차례에 불과했던 `기름도둑'이 IMF 한파가 몰아치고 부터는 5∼6건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한 손님이 건네준 카드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간 동안 차가 떠나 카드를 확인해 보니 신용카드가 아닌 직불카드로 밝혀져 낭패를 보기도 했다.
더욱이 `기름도둑'은 차량번호의 노출을 막기 위해 미등을 끄기 일쑤여서 주유소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대량 실업사태가 기름값 상승과 맞물리면서 급증한 `기름도둑'처럼 최근 서울 시내 경찰서에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의 고소 고발사건이 쇄도하고 있다.
경제한파에서 비롯된 이른바 `IMF신종범죄.'
평생 경찰서 근처에는 얼씬도 않던 `얌전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생활고를 못이겨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전북 고창에서 일어난 전화국 일용직 해고 근로자의 주택가 전화선 절단 사건, 최근에는 가출아내와 형의 무면허 단속에 불만을 품고 굴착기로 파출소 무기고와 순찰차량을 깔아뭉개는 황당무계한 범죄가 발생했다.
`IMF범죄'중 가장 빈도가 높은 범죄는 단순 폭력사건과 부도, 사기, 횡령 등 경제관련 사건이지만 `복고풍 범죄'도 만만치 않다.
서울 강남의 K고교 근처에서 중국집을 하고 있는 B씨（52）는 최근 K고 교사를 자처한 40대 중반의 신사가 탕수육과 자장면 3그릇을 주문하면서 대금은 학교에서 수표로 주겠다며 거스름돈을 요구, 별 의심없이 음식값을 빼고 잔돈 7만4천원을 건네줬다.
그러나 교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B씨는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음식을 주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스름돈을 받아간 선생은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살다보면 별일도 다 있다지만 B씨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권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