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확국] 태초의 혼란(8)
기사입력 1998년 02월 08일 15시 27분
사파리 개장이 임박하자 동물아파트에는 날마다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백수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공포 앞에서는 나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겁이 날수록 공격적으로 바뀐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자도 본능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
전에 있던 동물원에서 좁은 철창에 다시 갇혀 어디론가 장시간 옮겨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대단한 스트레스다.
게다가 겨우 도착해서 숨 좀 돌리려는 상황에서 다른 사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또다른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그때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백수의 왕답게 주도권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사육사들은 새로 온 사자들을 며칠 동안 아파트에 가뒀다가 어느 정도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간이방사장에서 운동을 시켰다.
나이와 덩치, 그동안 관찰한 성격 등을 기초자료로 삼아 예상되는 랭킹을 짰다.
왕후보 1순위는 역시 바우였다.
그러나 2위부터 5위까지는 서열을 정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사육사들은 개장이 다가오자 조심스럽게 부분 합사를 시키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파리에 모아놓으면 한바탕 피비린내가 나는 싸움을 벌일 게 뻔한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격리시켜 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첫번째 합사의 주인공은 바우와 아프리카에서 온 까미였다.
말이 합사일 뿐 사실은 `파워 테스트'였다.
승패가 가려지는 순간 패자를 보호하기 위해 패트롤카가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까미가 먼저 입장했다.
갈기털과 꼬리에 검은 털이 많아 까미라는 새 이름을 받은 까미는 다른 때와 달리 간이방사장에 혼자 나가자 서먹한 듯 눈치를 살피더니 한쪽 구석에 누워버렸다.
바로 그때 나타난 게 바우였다.
까미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아파트 벽을 사이에 두고 까미와 몇차례 신경전을 펼쳤던 바우는 까미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아직까지 앞발의 부상이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승부는 예상대로 빨리 판가름났다.
바우의 KO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