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두만강] 한 여인의 애달픈 인생극장
기사입력 1998년 02월 05일 15시 49분
역시 악극은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무대였다.
지난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눈물젖은 두만강'은 초일부터 40∼50대의 관객들이 몰려들어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눈물로 쓸어 안았다.
이 무대는 스포츠조선, 극단 가교, 극단 신시, SBS가 공동주최하고 중견 김상열이 연출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위험을 무릅 쓴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여인 남정애의 인생유전을 그린 최루 뮤지컬.
공연시작 전 이미 예매표만 1만8천여장이 팔려나가 악극의 인기를 실감케하고 있는 무대로 개막 이후 거의 만원을 이룬 관객들로 극장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
두만강가 두루치 마을에 사는 두만강 뱃사공의 딸인 남정애는 부상한 독립군을 만나 사랑에 빠진 후 긴 이별과 가난 그리고 멸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상해의 술집 가수로 전락하고 입양했던 아들은 독립군이 되어 일본 헌병대장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술집 흑룡강으로 스며든다. 직감적으로 아들이라는 것을 느낀 남정애는 거사당일 아들 대신 일본 헌병대장을 쏘고 결국 사형돼 두만강에 재로 뿌려진다는 게 극의 흐름.
관객들은 이 무대에서 세번 운다. 첫번째는 주인공 남정애가 사랑하는 아들을 가난 때문에 부잣집에 입양시킬 때, 두번째는 사랑하는 남편을 아편소굴에서 세번째 만나 이별할 때 그리고 아들을 대신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이다.
연출가 김상열씨는 "이번 무대는 평면적인 악극형식보다 현대적인 연극적인 기법을 동원했다"면서 "단순한 스토리 중심의 연대기가 아닌 추리적인 맛을 살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무대는 최근의 IMF한파 등으로 움츠러든 관객들에게 추억과 희망을 되새겨 준다. 지난 시절 관객들을 울렸던 악극의 묘미를 살려냄과 동시, 일제에 의해 수난당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각시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
관객 김중신씨(55．서울 광진구)는 "젊은이들 취향중심의 TV에도 밀려나고, 일반 연극은 너무 어려워 공연장을 찾을 수 없었는데 악극은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한 추억을 되살려 준다"며 흥분했다.
또 여성 관객인 김순이씨(60．수원시)는 "사랑하는 남편을 두만강에서 한번, 서울에서 또 한번 그리고 아편소굴에서 마지막으로 본 여주인공의 인생이 너무 슬퍼 수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연출가 김상열은 질곡의 역사 속에서 하얀 눈발처럼 살다간 한 가족의 애닯고도 가슴 시린 삶을 극적으로 형상화,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었다.
비련의 여주인공 남정애역의 권소정은 `굳세어라 금순아' `울고 넘는 박달재'에 이은 세번째 악극 무대에서 더욱 원숙한 기량을 선보여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
여기에 그의 상대역을 맡은 양재성은 무게감 넘치는 연기로 비극의 극대화를, 두만강 뱃사공 역의 박인환과 김진태는 한의 상징적인 인물을 독특하게 그려냈다.
또 마포 새우장사 김덕배 역의 윤문식은 특유의 재치와 해학, 시마무라 헌병대장 역의 최주봉은 개성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여기에 남정애의 유일한 혈육인 김민우역의 태민영과 어머니역의 박승태의 연기도 악극에 맛을 더했다.
젊은 배우들인 하인수 김정숙도 눈여겨볼만 했으며 11인조 악단이 들려주는 `달도 하나 해도 하나' `눈물 젖은 두만강' `청춘 블루스' `아내의 노래' 등 주옥같은 트로트가요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15일까지. 매일 오후 4시, 7시30분. (02)369_1571
[박용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