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4)고소영-남학생에 '인기 캡'
기사입력 1998년 02월 04일 15시 37분
편지로 친해진 선화와는 중학 2,3학년 시절을 거의 함께 보냈다.
중학교(서운중)때 나는 솔직히 공부보단 놀기를 더 좋아했는데, 내가 선화를 `타락'시킨 책임도 있다.
그렇다고 뭐 커다란 못된 짓은 아니고, 우리 둘은 주로 오락에 빠졌다.
가끔 `월담'까지 해가며 학교근처 오락실에 갔는데, 나는 갤러그 바블바블 카레이싱 슈퍼마리오 원더보이 등 거의 다 섭렵했다.
오락실에 탁 들어가면 오십원짜리를 한움큼 바꿔서 포커칩 쌓아놓듯 옆에 쌓아놓고 몇 시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꼬마들이 50원짜리 하나 얻으려고 옆에서 기웃거리는데, 나는 오락하는 방법 한번 물어보고 성의껏 가르쳐주는 녀석에게 하나씩 주었다.
오락에는 천재적이라 금방 따라가 도사급이 되자, 기계하나에 몇시간을 전세내고 앉아있는 나를 두고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오락실로 들어서면 그 아저씨는 기계를 은근슬쩍 꺼놓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평생 도움이 안되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미안하기도 하다.
오락실에서는 오빠친구들과 가끔 마주쳤다. 학교 1년선배이기도 한 그 오빠들은 종종 치사하게 "너 정장입고 오락한다고 네오빠한테 이른다"고 협박해 나한테 동전을 꾸어가기도 했다.
중학때 나는 옷을 잘 입었다. 나를 인형으로 가꾸는 엄마의 뒷받침이 컸겠지만, 나도 옷욕심이 있었다.
코트를 색깔별로 입었다. 또 당시 김완선을 무척 좋아해 김완선이 TV에 입고나온 짝 달라붙는 청바지나 워커, 또 프린트된 바지까지 첨단유행을 따라갔다. 학교에서의 패션은 나부터 시작됐다.
선생님한테도 시샘을 샀다. 당시 `마돈나'란 별명을 가진 여자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도 나보고 "너 이옷 어디서 샀니?"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옷 잘 입지, 옷걸이 받쳐주지, 이러니 남자애들이 나를 가만 둘 리 있겠는가.
한번은 도시락들고 2층에 내려갔다가(내반은 4층에 있고 친구반은 2층에 있었기 때문), 다 먹고 다시 올라가는데 남자애들이 못 올라가게 막곤 했다.
그러면 나는 쏘아보면서 "안 비켜, 안 비켜'하고 그랬는데, 용기있는 어떤 남자애는 꽃한송이를 들고 당시 유행했던 `도시 아이들'의 `한송이 장미를∼'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르며 프로포즈 비슷한 것도 했다. 지가 무슨 로미오라고.
여자친구애들과는 `요플레계'도 했다. `계'라고 해서 무슨 큰 돈놀이를 하는게 아니라, 몇명이서 돈을 모아가지고 `요플레'를 실컷 사먹는 먹자계였다. 우리들은 그때 피부가 좋아진다는 `요플레'를 많이 먹었고, `바나나우유'도 애용품이었다.
오락실 가느라고 담을 넘었지만, 때로는 요플레 사먹으려고도 담을 넘었다.
우리 몇명은 이미 위험인물로 찍혀 가끔 담아래 잠복해있던 학생과 선생님에게 걸리곤 했다. 걸렸다하면 남녀공히 몽둥이로 맞고 오리걸음을 해야하는데, 내가 걸렸을때는 많이 봐줬다.
`고소영'이 벌 받으러 운동장으로 내려가면 1반에서 5반까지 전남학생이 운동장의 나를 보며 "소영이 때리지 마세요, 봐주세요"라고 합창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위세에 눌린 선생님은 `민의'를 따랐고, 나는 열화같은 성원속에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의기양양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계속]
